미디어의 전달수단

인간에서 인공위성에 이르기까지

by 생각전사

적의 군사활동, 적 공격 위험성과 징후, 공격 임박과 공격 실시, 아군의 대응, 적과의 전투 경과와 피해 현황, 승패의 결과 등 전투와 전쟁 관련 소식은 무엇으로 전달될까?


기원전 490년 그리스 아테네 마라톤에서 벌어진 아테네군과 페르시아군의 전투에서 아테네가 승리했다. 이 승리 소식을 병사가 두 발로 왕에게 달려가 전하였다.

그리스 아테네와 페르시아간에 벌어진 마라톤 전투(BC 490년)
아테네 승리 소식을 전하기 위해 뛰어가는 그리스 병사. 병사가 뛰어간 거리 42.195km가 마라톤 경주의 기원이 되었다.

원시시대부터 소식과 정보, 위험을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람이 활용되었다. 원시와 고대에는 사람의 음성, 호각과 징, 북 등 기구를 이용한 소리, 소리가 미치지 못하는 장거리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신호, 깃발신호, 불빛신호, 약정된 표식 신호 등으로 소식과 정보를 전했다. 말을 타고 원거리를 이동해 소식과 편지, 명령지 등 문건이나 물건을 전달하는 파발이 있었고, 군대에 '전령'이라는 직책을 두어 직접 소식이나 물건을 전달하게 했다. 첩자를 이용해 적의 은밀한 내부정보를 빼내기도 했다. 간첩의 활용은 손자병법 마지막 13편 용간(用間) 편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군대의 정보획득 방식이다. 오늘날에는 인간정보(Human Intelligence)라는 이름으로 적의 내부 중요인물을 대상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캐내는 활동을 한다. 미디어도 인간정보를 매우 중시한다. 제보자, 취재원, 딥 트로트 등이 이와 관련된 용어이다. 사건사고 발생 소식과 피해자 현황, 뉴스가 될만한 특이사항 등을 제공하는 사람을 제보자라고 한다. 미디어의 주요 뉴스정보원이다. 특히, 깊은 목구멍이라는 뜻의 딥트로트(Deep throat)는 내부의 은밀한 정보를 제보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들 덕분에 개인, 조직과 국가가 은폐하는 정보가 언론애 유출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는 특종보도가 된다. 미국이 월남전에서 민간인을 살해한 미라이 사건, 월남전에 개입한 통킹만 사건, YS시절 육사 하나회 명단 등이 딥트로트에 의해 전모가 드러났다. 딥트로트가 누구인지 노출하지 않는 것이 언론의 절대적 의무로 되어있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의 취재원 보호라는 명목으로 용인되고 있다.


미디어는 정보원인 인간의 제보만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전투현장을 취재보도한다. 인류 최초의 종군 기자는 워드스와스 워크웰(Wordsworth W. Workwell)이다. 그는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동안 미국 육군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전쟁 현장에서 보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전쟁 보도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현대 전쟁보도의 선구자는 영국의 더 타임스(The Times) 윌리엄 하워드 럿셀(William Howard Russell) 기자이다. 그는 19세기 중반 영국 더 타임스 신문 종군 기자 신분으로 크림 전쟁(1853-1856)을 취재보도했다. 그는 크림 전쟁 기간 동안 전쟁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군대의 훈련과 전투, 병력의 상황 등을 세세하게 보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럿셀 덕분에 전쟁의 실상이 생생하게 대중에게 전달되었으며, 군사 작전의 문제점과 부패, 병사의 고통, 군대 병원의 실상 등이 폭로되었다. 그의 보도로 백의 천사로 불리는 나이팅게일이 병원을 짓는데 필요한 모금활동을 할 수 있었다. 종군기자들의 목숨을 건 노력으로 군대의 불편한 진실이 알려졌고, 군대의 고질적인 병폐와 은폐 행위, 군대에서의 인권보호, 군 병원과 병영시설의 개선 등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동물이 사용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통신용으로 훈련된 새나 포유류였다. 훈련된 비둘기와 개, 말이 활용되었다. 특히, 비둘기는 통신용의 역할이 컸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 제국에서 비둘기는 먼 곳에 있는 왕궁이나 군대에 편지를 전달하고 특정 위치로 돌아오도록 훈련받았다. 구약성경을 보면 대홍수 시기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나뭇잎을 물고 돌아오자 육지에 물이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구절이 나온다. 오래전부터 비둘기가 통신수단으로 중요하게 활용되었다는 이야기다.

1차 대전 당시 통신용 비둘기(사진자료=인터넷)

유선 전화기와 무선전파가 미디어의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전쟁에 대한 소식은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전파될 수 있었다. 전화의 개념은 19세기 초기에 이미 존재했다. 알렉산더 그레함 벨(Alexander Graham Bell)은 1876년에 전화기 특허를 획득하면서 전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벨 전화기는 음성신호를 전기신호로 변환하여 전달하고 이를 다시 음성으로 변환하여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유선 전화는 선로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로 초기에는 많은 제한이 따랐지만 점차 네트워크가 확장되면서 중요 소통수단이 되었다. 6.25 전쟁 당시 한국에 종군한 기자들은 미군 군용 전화기를 통해 일본주재 소속 언론지국에 구두로 불러주는 방식으로 본사에 기사를 송고할 수 있었다. 급할 경우는 미군 군용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종군 여기자 마가렛 히긴스는 맥아더 장군의 도움으로 군용기를 타고 일본 도쿄로 날아가 미국 본사로 기사를 보내기도 했다. 통신수단이 제한되면 전투현장에서 취재를 빨리 해도 기사를 보낼 방법이 없어 기사화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는 작업이었다. 청일전쟁을 취재한 미국의 한 종군기자는 증기선을 빌려 타고 전선을 취재해 보도하기도 했다.

6.25전쟁 종군 여기자 마가렛 히긴스와 맥아더 장군(사진자료=인터넷)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화기는 계속 발전하고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었다. 무선통신기술과 위성통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무선 전화기가 등장했고, 이동전화와 스마트폰 등으로 발전하면서 휴대가 간편해지고 사진과 동영상을 직접 찍어 전송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추게 되었다. 오늘날 인터넷, VoIP(음성 통화용 인터넷 프로토콜) 등 현대적 통신 기술이 등장하면서 전화 통신은 더욱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전쟁터를 누벼도 텍스트, 사진, 동영상 취재보도가 모두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필자는 1990년대 중반 미디어를 상대로 일을 하는 군 공보업무를 하면서 휴대전화, 팩스, 사진기를 1세트로 하는 공보장비를 구상한 적이 있다. 통신수단인 휴대전화를 활용하여 텍스트와 사진을 송수신할 수 있는 개념이었다. 문제는 이들 장비들이 부피가 커서 싣고 다닐 별도의 차량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예산과 복잡한 장비 구성문제로 이 개념의 현실화가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러던 2007년 1월 9일 애플폰이 세상에 나왔다. 이 획기적인 기기는 필자가 생각한 모든 것을 한방에 해결해 주었다. 스티브잡스의 위대한 업적이다.

스티브잡스와 아이폰의 탄생(사진자료=인터넷)

전쟁을 취재보도하는 미디어는 통신수단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사람을 보내 알리던 시대, 유선과 무선을 통해 기사를 불러주고 받아쓰던 시대, 사진 1장을 보내기 위해 차를 보내고, 배와 비행기를 띠우고, 비디오테이프와 영화필름을 배로 부치던 시대는 갔다. 일례로 6.25 전쟁 당시 경향신문의 국군 1사단 평양 입성 특종은 당시 1사단 정훈부장이었던 노영서 대위(훗날 육군 정훈감, 예비역 준장)가 사단이 징발한 소련제 지프차를 타고 밤새 서울로 달려와서 이혜복 기자를 태우고 가 취재보도한 것이다.


미디어의 뉴스기사는 위성을 통해 초속 30만 Km 속도로 달려 세계 곳곳에 다다르고 있다. 전문적인 식견과 지식, 신문. 라디오. 방송제작시스템을 갖춘 대중매체라는 거대 자본이 없어도 이제 손안에 든 스마트폰과 SNS 플랫폼을 통해 개인이 제작한 글, 사진, 동영상이 즉각 세계로 서비스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개인이 특종보도를 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이제 전쟁과 전투뉴스는 특정인과 특정매체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를 생생히 목격하는 개인의 손에 달린 문제가 되었다. 자본과 권력의 뉴스 독점시대는 민주화와 개인화의 시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독점적인 지위, 제4부로서 권력을 누린 미디어 권력도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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