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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Feb 03. 2024

기술의 발달과 미디어의 진화

원시 동굴 벽에서 내 손 안의 스마트폰까지

미디어(Media)란 "인간사회에서 자신의 의사나 감정 또는 객관적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수단"을 말한다. 한마디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 매체(媒體)이다.


신석기시대 인류의 조상 호모사피엔스는 동굴에 벽화를 그렸다. 사냥으로 살아가는 수렵시대 인간에게 동물은 매우 귀중한 존재였고 그 사냥 장면은 기록으로 남길 만큼 중요한 내러티브였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 시대 인간은 암벽을 매체로 활용해 그림을 남긴 것이다. 당시의 동굴벽은 그 시대 인간들에게 웅장한 서사를 들려주는 이야기 광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잊혔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기록되었지만 동굴 속이라는 은폐된 공간, 고정된 매체라는 한계로 대중을 지향하지 못했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사진=인터넷 자료

로마제국은 동굴이 아닌 광장에 돌이나 철에 공지내용을 새겼다.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왕은 세상에 알리는 법전을 돌에 새겼다. 보존성이 뛰어나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동굴 벽보다 불특정 다수의 접근성이 용이하지만 고정된 매체라는 점에서 동굴벽과 다를 바 없다.


종이가 발견되기 전까지 양이나 소 등 동물가죽이나 대나무, 나무판이 매체가 되었다.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문자를 적어 소식을 전하고 필요한 내용을 기록하여 보존했다. 가볍고 이동이 용이한 매체 활용 덕분에 내용이 멀리까지 전파될 수 있었다. 비로소 현실 공간에서의 수평적 이동인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후대로 이어지는 수직적 이동을 통해 지적 축적과 인류의 유산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갈대의 일종인 사이프러스 파피루스(Cyperus Papyrus, 지초(紙草)로 만들어진 이집트의 파피루스, 닥나무를 가공한 한지 등이 발명되면서는 수평적 이동과 커뮤니케이션, 지적 축적은 더욱 활발해졌다.


인편, 파발마, 봉수대 등 전통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콘텐츠를 담아내는 매체의 발달과 함께 더 빠르게 더 멀리 소식을 전파할 수 있게 했다.


미디어로서 신문과 종이책의 탄생은 민주주의 시대를 여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일부 지배계급과 특정계층이 독점하던 지식과 소식이 대중에게 전파되고 지식과 정보의 보편화로 대중의 교양이 높아지고 정치적 각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신문의 조상은 BC 59년 로마 카이사르가 공지문을 돌과 철에 새겨 시민들에게 알린 악타 디우르나(Acta Diurna)로 알려져 있다. 인류 최초 신문은 1605년 독일의 렐라티온(Relation)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조선시대 조보(朝報)가 이보다 훨씬 앞섰다. 조보는 선조 때인 1577년 8월 첫 발행됐다. 민간에서 인쇄하여 판매한 조보는 국왕 명령과 지시, 유생과 관료들의 건의, 관리들에 대한 인사행정, 자연계 및 사회에서 발생한 특이한 현상 등을 담은 지금의 신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조보 첫 장에는 왕실과 육조(六曹) 등을 구분해 당일 일어나는 소식을 전했다. 나중에 선조가 이를 알고 기밀누설을 이유로 같은 해 11월 27일 폐간조치했다.

로마 공지문이 새겨진 돌 악타 디우르나(사진=네이버 지식백과)
독일 신문 렐라티온(1609) 사진=위키백과
조선시대 조보(사진=인터넷 자료)

신문은 글씨를 배운 식자층만이 읽을 수 있는 매체이다. 1900년대 초 탄생한 라디오는 다르다. 문맹자라도 말을 알아듣기만 하면 얼마든지 라디오를 통해 소식과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 신문은 배송체계와 유료 구독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라디오는 전파 송신과 중계소 설치, 수신장치가 갖추어지면 더 광범위한 지역을 커버할 수 있다. 매체운영자 입장에서는 더 돈이 많이 들지만 매체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신장치만 구입하면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매체이다. 그래서 라디오가 더 대중적이고 더 서민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상용화된 TV는 복합 미디어로써의 위상을 굳혔다. 뉴스, 사사상식, 드라마, 공연, 쇼 등 다양한 콘텐츠를 대중에게 제공했다. TV 안에 온 세상만물이 다 들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1965년 8월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전격 개입한 월남전은 TV 전쟁이라고 불렸다. 이 때 미국가정의 80%가 TV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거실 전쟁이라고도 한다.


더욱 획기적인 것은 2000대 초 스마트폰의 탄생이다. 뉴스, 드라마, 공연 등 TV가 제공하던 콘텐츠 수준을 넘어서 사진촬영과 공유, 실시간 위치추적, SNS 등 쌍방향 소통, 은행업무, 증권투자, 쇼핑, 행정업무 등 못하는 게 없는 미디어가 되었다. 이제는 스마트폰 없이 인류가 생활할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전쟁에서도 스마트폰의 기능은 커뮤니케이션과 심리전 영역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초의  SNS 전쟁이라고 불리는 시리아 내전에 이어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SNS 전쟁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으로 스마트폰과 이에 연결된 SNS가 전쟁여론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주장을 실시간으로 전파하고 러시아의 가짜뉴스에 즉각 대응하면서 러시아의 심리전을 무력화시키고 국제여론을 친 우크라이나로 유도하는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세상을 다 품은 스마트폰(사진=인터넷 자료)

기술의 발달은 미디어의 진화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다. 기술을 받아들인 미디어는 더욱 빠르고 더욱 광범위하게 더욱 진실에 근접한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미디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전쟁 또한 미디어의 진화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러시아의 가짜뉴스는 비주얼 포렌식을 통해 가짜임이 금방 드러날 수 있는 기술단계에 도달했다. 우크라이나를 취재하는 서방언론은 많으면 1개 언론사가 10명이 넘는 비주얼 포렌식팀을 운영하여 사진과 영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별하여 보도하고 있다. 이런 미디어의 저널리즘은 실제 전장에서 싸우는 군인들이 적의 기만전을 깨부수고 사실을 오판하지 않도록 하는데 매우 유용한 소스가 되고 있다.


기술의 발달과 미디어의 진화는 진실을 추구하는 국가 지도자와 군대에게는 유리하고 기만을 추구하는 독재자와 그의 군대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이 되었다.(계속)


#스마트폰 신문 #TV #우크라이나전쟁 #러시아 #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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