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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Jan 26. 2024

전쟁과 정보조작

군과 미디어의 숨바꼭질

북한 김정은이 2024년 1월 8∼9일 주요 군수공장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우리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단정하면서 "조선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한 것을 우리 연합뉴스가 인용 보도했다. 특히 "대한민국이 우리 국가를 상대로 감히 무력 사용을 기도하려 들거나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려 든다면, 그러한 기회가 온다면 주저 없이 수중의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이는 즉시 우리나라 뉴스통신사 연합뉴스를 비롯한 전 매체에 주요 뉴스로 긴급보도됐다. 연합뉴스는 북한 조선중앙통신 뉴스를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 연합뉴스 서비스를 받는 모든 미디어도 거의 동시간대에 알 수 있다. 뉴스가 뉴스를 낳는 구조다.


1월 6일에는 서해상 NLL 북방에 해안포 60발을 쐈고, 우리 군이 두배로 대응사격을 하기도 했다. 1월 24일에는 서해상으로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수발의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며 군사적 긴장을 더욱 높이고 있다고 미디어가 관심 있게 보도하고 있다.


이에 우리 군은 한미군사훈련, F35 공중훈련, 미국 항모 한반도 전개 훈련 등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이렇게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자 일본은 민간대피시설을 점검하는 등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외신보도도 주목을 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의 전쟁공포증은 그리 높지 않고 분위기 또한 차분한 편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한반도 전쟁 우려 소식은 전 세계 뉴스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있다. 우리 동네에 북한의 포탄이 떨어지는 순간 내가 딴 일을 하고 있었다면 그 소식을 미국 워싱턴에 있는 친척이 먼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그 공포는 현장에 있는 나보다 현장을 모르는 먼 이웃이 더 공포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실체가 불명확한 공포가 더 공포스러울 수 있는 이치와 같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2010.11.23)

전쟁공포가 국민의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온다는 이유로 정보가 조작될 수 있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시 그랬다. 북한군의 전면남침은 한미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북한의 가짜평화공세인 이중플레이가 한몫했다. 김일성은 소련과 비밀리에 남침준비를 하면서 1949년 6월 29일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스웨덴 스톡홀름 평화대회에 참석시켜 원자폭탄 사용금지와 군비축소를 주장하는 한편 1950년 6월 '남북의 민주주의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자 회의'를 해주, 또는 개성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6월 10일에는 북한이 구금하고 있던 조만식 선생과 남로당 총책 이주하와 김삼룡을 맞교환하자는 제안과 6월 21일 서울 또는 평양에서 '남북국회 대표자 회의'를 갖자는 속임수를 썼다. 북한은 이미 6월 11일 기동훈련을 핑계로 38도선 일대에 병력을 전진 배치하고 있었다. 이를 까맣게 모르는 우리 군과 정부는 북한군의 움직임을 통상적인 훈련으로 이해했고 모내기 철을 맞아 국군장병의 집안 일손 돕기 휴가를 시행하였다. 북한군 주력부대가 침공한 서부지역을 담당한 1 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육군본부 명령으로 시흥 보병학교에서 3개월 과정의 교육을 열흘 째 받던 중인 6월 25일 오전 7시 작전참모의 보고를 받고서야 북한군의 기습남침을 알았다. 전쟁발발 3시간이 지난 때다.


하지만 북한군의 조공이 침입한 동부지역 춘천-홍천 축선을 담당한 6사단은 예외였다. 사단장 김종오 대령은 사전 수색정찰을 통해 획득한 정보를 토대로 북한군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하고 장병들의 휴가를 금지하는 한편 진지를 구축하는 등 적 공격에 철저히 대비했다. 6.25 전쟁 초기 북한군 주공은 한국군 주력을 한강 이북에 고착시키고 북한군 조공으로 하여금 동부지역을 돌파 우회 포위기동하게 함으로써 아군 주력을 한강 이북에서 섬멸하려는 계획이었다. 기습남침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3일 동안 아군을 공격하지 않고 동부 조공의 진출을 기다리며 서울에 머문 이유이기도 하다. 6사단은 북한군의 공격에 밀리지 않고 진지를 사수하다가 서울이 적 수중에 들어가자 배후의 위협을 받게 되어 군의 전선 조정 명령에 따라 후퇴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 정부와 군은 북한군의 기습남침과 공격진출선에 대해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정보조작까지 하는 뼈아픈 잘못을 저질렀다. 당시 국방부 정훈국은 언론을 상대로 전황을 알리고 브리핑을 하는 공보업무를 담당했다. 6.25 전쟁이 발발한 당일 오전 국방부 사진촬영대장 임인식 중위는 정훈국장 이선근 대령으로부터 몇몇 기자를 대동하고 문산축선에 가서 현지취재를 하라고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지프차로 이동하던 취재진은 전선까지 못 가고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후 임 중위는 3일 동안 밤을 새우며 일을 하다가 이촌동에 있는 집에서 잠시 쉬던 중에 커다란 폭음에 놀라 집을 뛰쳐나와 한강교 폭파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육군보도과장 김현수 대령(장군 추서 진급)은 북한군이 서울에 진입한 사실도 모른 채 KBS에 보도협조 차 갔다가 방송국을 점령한 적의 기습사격을 받고 순직했다. 서울이 적의 수중에 떨어질 때까지 KBS라디오에서는 "수도 서울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 날 녹음한 이승만 대통령의 육성방송이 전파를 탔다. 이때 이미 전시정부는 시흥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한강교 폭파도 서울시민 철수 전에 전격 시행되어 수많은 시민이 한강에 떨어져 사망했다.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보의 부족, 판단의 부족, 국민의 군대 국민의 정부로서의 인식과 정치철학의 부재가 가져온 비극이다. 그리고 언론이 현장을 취재하지 않고 당국이 주는 보도자료와 설명에만 의존하던 저널리즘 부재 시대의 비극이기도 하다.

6.25전쟁 당시 한강교 폭파(1950.6.28)

군은 미디어에게 예민한 정보를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정보조작의 유혹을 받고, 미디어가 엉뚱한 방향으로 기사를 쓰고 사실과 다른 기사를 내도 묵묵부답 고쳐주려고 하지 않는다. 집단 이기주의와 심리전, 기만전이 진실추구를 압도하기도 한다. 독일군은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히틀러는 전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나치 친위대 SS를 폴란드 군복을 입혀 폴란드 국경 근처에 있던 독일방송국을 공격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죄수를 독일군으로 위장시켜 현장에서 사살하여 피해자인양 조작했다. 전형적인 기만전이다. 이 정보조작 사실은 전후 작전에 관여했던 독일장교의 전범재판에서 밝혀졌다. 미국이 월남전에 본격 개입하기 위해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는 주장이 있다. 본래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는 8월 2일과 4일, 두 차례 교전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했지만, 4일 교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1971년 6월 뉴욕타임스는 7천 페이지에 달하는 <펜타곤 페이퍼, Pentagon Papers>를 입수하여 분석한 결과, 통킹만 사건의 두 번째 교전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이어 뉴욕 타임스는 2005년에도 로버트 한 요크 NSA(군함의 후방에서 북베트남의 무선통신을 감청하는 기관) 역사 연구관의 말을 인용하여 NSA의 중간간부들이 감청내용을 왜곡했고 정책결정자들은 허위보고에 근거해 폭격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것이 의도적인 왜곡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당시 통신 감청기관인 NSA가, 소나(어뢰공격 탐지기구) 담당 병사가 배의 프로펠러 소리를 착각하여 어뢰공격이 있었다고 보고하자 당시 함정의 승무원들은 공격이 있었다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취합했던 정보들을 잘못 해석하여 생긴 오류라는 주장이다. 당시 교전한 미군과 월맹군의 전력을 보면 미군 구축함 1척, 항공모함 1척, 항공기 4대이고 월맹군은 어뢰정 3척이다. 피해현황이 인상적이다. 월맹군 피해가 어뢰정 3척 손상, 사망 4명,  부상 6명인데 비해 미군 피해는 없었다.

독일 나치 무장친위대(SS) 사진=인터넷

군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적을 속이는 심리전, 기만전은 전승에 기여하는 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과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야 할 의무를 진 미디어를 상대로 심리전과 기만전을 하는 것이 타당한가? 대답은 No다. 군이 미디어를 상대로 하는 활동을 공보(Public Affairs)라고 한다. 공보의 목적은 신뢰(Trust) 구축에 있다. 진실을 알리는 것을 의무로 한다. 말할 수 없는 부분은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방법이다. 한 때 군의 공보도 거짓말에 동참하거나 묵묵부답한 적이 있다. 군의 공보철학이 미성숙했던 시절이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최소한의 지연으로 최대한 많이 알려주고자 한다. 하지만 그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집단사고의 일방향성과 이를 돌파하지 못하는 공보철학과 힘의 부족, 무소신의 위험성은 언제나 있다. 시스템과 사람 다 관계된 것이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되어있다. 국가존망과 국민생명이 달린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하는 군. 이기기 위해 심리전과 기만전을 구사하는 것이 전략전술의 방편으로 인식되는 군대. 하지만 국민과 미디어를 상대로 하는 분야에서의 궁극의 답은 진실추구에 있다. 그것이 국민과 함께 전쟁에서 이기는 길이요,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군대가 지향해야 할 원칙이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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