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루스에서 디지털까지
인간의 생각이나 소식, 경험은 무엇으로 전달될까? 서로 가까이에 있는 상황에서는 음성과 말, 손짓발짓의 행동으로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서로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그림과 문자 등 기호를 적은 기록물로 전달되어야 한다. 그 기록을 고대에는 돌, 점토, 대나무, 나무판, 비단, 동물가죽과 뼈, 철 등에 새겼다. 이후 종이가 발명되면서 인간의 생각과 말, 사건과 경험은 문서, 책, 신문의 형태로 종이에 기록되었다. 인류사에서 종이는 오랫동안 미디어의 그릇 노릇을 했다.
영어 페이퍼(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이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파피로스(papyros), 라틴어로는 파피루스(papyrus)라고 한다. 이집트 특산의 카야츠리그사 과(科)의 식물(학명 Cyperus Papyrus L.), 또는 이것을 재료로 만든 종이와 이것에 쓴 문서 등을 뜻한다.
파피루스 풀(草)은 고대 이집트에 크게 분포하였다. 그 줄기는 그물, 매트, 상자, 신발, 가벼운 배의 재료가 되었으며 건축용 기둥으로도 사용되었다. 파피루스는 줄기를 얇게 갈라 표면과 뒷면을 가로세로로 놓고 두들겨 말린 후 용도에 따라 옆으로 이어서 사용했다. 파피루스 문서는 명령, 보고, 회계, 의학, 기도문, 세속적인 문학, 설계도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종이를 최초로 개발한 나라는 중국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제조법이 AD 2~6세기 경 우리나라로 유입되었다. 한지(韓紙, Korean paper 또는 hanji)는 한국 전통 방식으로 제조한 닥나무로 만든 종이이다. 조선말에서 일제강점기 때 서양식 종이가 들어오고 일본식 제지법이 퍼지면서 전통 한지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오늘날 종이가 대세를 이루었다.
한지는 임명장, 명령서, 문서기록, 책, 서찰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학문을 숭상한 옛 선비들은 늘 곁에 문방사우(文房四友: 종이, 붓, 먹, 벼루)를 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한지였다. 닥나무로 만든 한지는 질기고 윤기가 나며 무엇보다 먹이 잘 스며들어 글씨와 그림을 잘 품어내는 명품 미디어 그릇으로써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고려 팔만대장경이 나무로 만들어진 반면 조선왕조실록은 우리의 한지로 만들어졌다. 보존력과 기록으로써 가치가 뛰어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한지는 이런 미디어 그릇 외에도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군인들의 갑옷을 만드는데 쓰였고, 온돌방 장판으로도 사용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한지를 방바닥에 두껍게 바르고 그 위에 콩기름을 입혀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여 오래도록 쓰는 특유의 지혜를 발휘했다.
종이는 글과 그림을 담을 수 있지만 빛과 소리는 담을 수 없다. 소리는 호각, 나팔, 꽹과리, 북, 징 등의 수단을 통해 상호약정된 뜻을 전달하였다. 옛날 군대에서 북소리는 전진을 의미했고, 징은 후퇴명령에 사용되었다.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데는 불빛과 연기가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변방에서부터 지금의 서울 남산에 이르는 산꼭대기에 설치된 봉수대에 불을 지펴 원거리 통신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남산의 중앙 봉수대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설치하여, 갑오경장 다음 해인 1895년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었다. 평시에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경계에서 아군과 전투를 벌이면 5개의 불을 올리도록 하였다. 남산 봉수대는 전국의 봉수가 도달하게 되는 중앙 봉수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다.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여 5개소가 있던 빈터에 관련자료를 종합해 1개소를 복원하였다.
우리는 부드러운 음성이나 눈빛, 손짓과 발짓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목소리, 행동, 나아가 북소리, 징소리, 불빛 신호 등은 보내는 거리와 담을 수 있는 내용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를 획기적으로 바꾼 사건이 있다. 바로 음성정보를 신호정보로 바꾸어 유선을 통해 보내는 전화기의 발명과 무선을 통해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무전기, 전보, 라디오, TV 등 전파 송수신지의 발명이다. 전파는 미디어의 그릇 깊이와 넓이를 이전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바꾸었다. 더 이상 전령과 파발, 봉수대의 불빛이 필요하지 않게 됐다. 거실과 안방에 앉아 TV화면을 통해 세상만물을 볼 수 있게 됐다. 심지어 먼 나라 전쟁소식도 TV를 통해 거의 실시간대로 보는 시대가 됐다. 군대 지휘통제실은 이런 전파신호를 통해 수집된 신호정보, 영상정보, 인간수단을 통해 수집된 정보가 전파를 타고 보고된 인간정보과 융합되면서 고도의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혁명적인 것은 디지털 미디어의 탄생이다. 아날로그는 원자(Atom)를 기초로 한다. 물질로 구성되었고 연속적이며 복제에는 자원이 추가로 필요로 하다. 디지털은 0 또는 1이 비트(Bit)로 구성된다. 0과 1의 이진수 불연속성의 특성을 갖으며 무한복제가 가능하다. 복제에 자원이 더 이상 소요되지 않는다. 물질로 이루어진 아날로그 세상에 디지털카메라를 갖다 대고 사진을 찍는 순간 더 이상 원자는 존재하지 않고 비트만이 존재하게 된다. 이 비트는 GPS와 광케이블로 연결된 전파신호를 타고 SNS 서비스 플랫폼으로 달려가며 SNS와 연결된 지구상의 모든 인간에게 실시간 소비된다.
돌, 파피루스, 종이, 필름 등에 콘텐츠를 담는 아날로그 방식과 전혀 다른 디지털 기록방식은 통신수단의 진화와 융합되면서 우리의 생각과 소통방식, 생활방식과 삶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모든 것은 내 손 안의 스마트폰 속에서 이루어지고 소구 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날로그 방식의 사고 속에 머물러있다. 아날로그가 인간적인 삶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나의 몸과 내가 머무는 공간이 원자로 구성된 물질의 세계라는 점에서 옳다. 그러나 비트로 구성된 디지털 세상은 아날로그 세상을 복속시켜 나가고 있다. 비트로 된 유명인의 이미지가 나를 조종하며, 유명 연예인의 팬들이 아날로그가 비트로 변한 가수의 영상을 보고 노래를 들으며 그를 칭송하는 댓글을 달고 다른 이의 댓글 비트에 환호하고 있다. 우리가 글을 쓰는 브런치북 플랫폼도 작가의 생각과 노동을 비트로 만드는 공간이다. 산업화 시대 육체노동이 눈에 보이는 자본가에 의해 착취당했다면 디지털 시대 인간은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창의성과 노력이 착취당하는지도 모르는 채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창조물을 헌납하고 스스로 추종하는 관종의 노예대열로 행진하고 있다.
디지털 세상. 우리는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을 활용해 영상과 이미지, 문자라는 비트를 만들어 내고 있다. 포털과 쇼핑몰 검색창에 디지털 흔적이라는 비트를 만든다. 우리가 남기는 모든 형태의 비트는 포털사와 쇼핑몰 운영자, 디지털 플랫폼 빅데이터에 쌓이고 디지털 자본의 표적이 되어 우리를 향해 맞춤형 광고가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공짜와 편리를 취하고 자본은 우리의 소비를 촉진하여 호주머니를 노리는 세상이다.
오늘날 디지털 시대 미디어의 그릇은 무한대로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인류의 아날로그 삶을 디지털의 심연으로 송두리째 삼켜 버리는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이 예측한 독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우리 사회는 전 국토에 설치된 디지털 CCTV가 시민을 감시하고 있다. 그 기록은 빅데이터로 처리된다. 아날로그가 점점 디지털에 복속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미디어의 진화는 인류에게 기회의 장이자 도전의 장이 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