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국가 vs 민주국가
2024년은 우리 대한민국과 한반도 주변국 정치권력의 지속과 변동이 예상되는 해이다. 3월 15일에서 17일 치러지는 러시아 대선에서 강한 러시아를 주창하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무난히 재집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4월 10일에는 대한민국에서 제22대 총선이 치러진다. 국민들이 윤석열 보수정권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여당 우위의 국회를 선택할 것인지, 정권을 견제할 야당 우위의 국회를 선택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이다. 오는 11월 5일 치러질 미국 대선이 더 드라마틱할 전망이다. 강한 미국을 지향하되 책임을 동맹국에 부담시키는 고립주의 성향의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과 세계 제1강국의 면모와 책임을 강조하는 현 바이든 대통령의 재대결 결과는 세계정세와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따라서 미디어는 이런 정치권력 이슈에 주목할 것이고 여론이 곧 선거결과에 미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치권력은 미디어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려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 말처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일까? 서로가 목적이라고 치켜세우며 서로 수단으로 전락하는 이율배반이 겉으로는 의리로 보이지만 뒤로는 향후 전리품을 노린 사심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애써 서로 웃는 계절이 온 것이다.
정치권력과 미디어 관계는 현대 사회에서 매우 복잡하고 중요한 주제이다. 정치권력은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의 정책과 이념을 전파하고, 미디어의 보도와 여론에 영향을 주려고 한다. 미디어는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정치권력과 협력하거나 대립하기도 한다. 미디어는 정치 담론과 주체를 재구성하고, 정치영역에 참여하고, 정치의 미디어화 현상을 일으킨다. 이러한 정치권력과 미디어 관계는 사회, 경제, 문화, 기술 등 다양한 요인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하고 있다.
독재와 민주는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이것은 권력의 원천에 대한 정치철학적 신념에 기초한다. 왕권신수설에 기초한 왕조시대에는 권력이 국왕에게 집중되었다. 유럽 중세시대에는 교황이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신이 지배하는 사회임을 말한다. 오늘날 유럽에 남아있는 성당의 건축, 조각, 그림, 유물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민중은 피지배 계급으로 신의 피조물, 왕을 섬기는 백성에 지나지 않았다. 중상주의 시대와 산업혁명의 시대에 발아하여 자본을 축적한 부르주아 계급은 프랑스혁명을 통해 왕과 왕비를 단두대에 올려 세워 목을 자르고 정치권력을 차지했다. 이를 지켜본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이 주동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독재를 고안했고, 여기에 레닌은 전위당 이론을 붙여 당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소련 공산화 혁명을 완수했다. 이런 혁명의 과정과 결과가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독재국가로 이어지고 있다. 미디어도 이런 정치적 변혁과 혁명의 과정 속에서 각각의 역할을 요구받고, 이에 적응하거나 실패하거나 저항하면서 존재하고 있다.
히틀러가 선전선동에 능한 독재자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실패한 상업 미술가이자 제1차 세계대전에 병사로 복무하고 상병으로 만기전역한 히틀러가 나치 독일 최고 권력자가 된 것은 그의 탁월한 연설능력과 선전선동의 결과였다. 히틀러의 선전선동술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인물은 요제츠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1897.10.29~1945.5.1)이다. 나치당 정치인으로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대중계몽선전국가부 장관을 지냈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은 이후 나치 독일의 뉴스 매체, 미술과 정보를 장악하고 통제했다. 특히 당시 새로 등장한 라디오와 영화 매체를 능숙하게 이용했다. 당의 선전 주제에는 반유대주의와 기독교 교회에 대한 공격,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인종주의를 통해 독일 국민의 사기를 높이고자 했다. 독재가들에게 미디어는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김일성 세습체제는 주체사상과 유일사상, 백두혈통 강조 등의 이미지 조작을 통해 김씨 왕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 독재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맨 꼭대기에 김일성 주의를 위치시킴으로써 북한 주민의 머리와 생각을 마비시키고 외부 소식을 철저히 차단하는 대신 통제된 당의 선전선동수단을 이용해 기획된 메시지만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이를 소유하는 것조차 무자비하게 처벌되고 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부재한 사회이다.
우리나라는 헌법으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탄생 초창기,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시절 국가주의에 의해 언론이 통제되고 이용된 역사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언론은 그때보다 훨씬 더 자유스러워졌다. 언론노조에 의해 사주의 일방적 경영, 언론사 데스크의 압력이 어려운 환경에 처했다. 그렇다고 완전한 언론자유를 보장받고 있지는 못하다. 독재국가의 미디어가 국가소유라면 민주국가의 미디어는 사기업이다. 민주국가에서 미디어는 권력과 자본에 의해 더욱 교묘하게 통제되고 있다. 대물림되는 족벌경영의 미디어, 정부의 자본이 투입된 미디어, 기업이 대주주인 미디어, 우리 사주 형식인 기자와 직원의 공동소유 미디어, 1인 미디어 등 다양하다. 미디어도 자본주의 경쟁 속에서 생존해야 한다. 이 숙명이 미디어 통제의 지렛대가 된다. 정치권력과 자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법에 의한 규제, 주식의 소유, 주요 미디어 대표이사의 선임과 임명권, 각종 위원회를 통한 통제, 광고의 배분, 국민의 세금으로 형성된 국가예산의 지원 등등 채찍과 엿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인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제4의 권력으로 부상한 미디어의 횡포를 막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독재국가의 미디어는 권력의 일방적 복종 아래 놓여있지만 민주국가의 미디어는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서로 갈등하고 협력하고 견제하는 방식으로 생존하는 숙명에 놓여있다. 특히, 스마트폰의 탄생과 활용, SNS, 인터넷 미디어 발전에 따라 미디어의 소비자인 개인이 미디어의 공급자가 된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권력은 전통적 정치권력이 아닌 시민의 손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정치권력은 기술의 발전에 손 놓고 있지 않다. 권력과 자본을 활용해 개인 미디어를 고용하고, 심지어 여론과 댓글을 조작하여 그들의 정치권력을 창출하고 유지하고자 눈을 돌리고 있다. 오늘날 민주국가 미디어는 권력과 자본, 기술의 발전, 국가와 사회 그리고 시민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느냐 소멸하느냐 굴절하느냐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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