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구경꾼들
사각링 위에 피투성이가 된 두 선수가 서로 엉켜있다. 심판이 둘을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쓴다. 두 몸뚱이를 지탱하는 네 다리가 휘청거린다. 둘 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억지로 떨어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서로를 향해 펀치를 날린다. 주먹이 그저 허공을 가르고 간혹 서로의 안면과 복부에 꽂힌다. 그때마다 누구는 환호하고 누구는 탄식한다. 구경꾼들이다. 두 선수의 승리에 이권이 달린 사람, 선수의 가족과 애인, 친구, 한쪽 선수를 좋아하는 펜, 이도저도 아닌 단순한 구경꾼들… 이들 앞에서 벌어지는 이 구경거리는 종이 울리지 않는 이상 피비린내가 나도 경기는 끝나지 않는다. 피는 구경꾼을 더욱 흥분되게 만든다. 선수도, 심판도, 관중 누구도 이 게임을 함부로 끝낼 수 없다. 오직 시간과 규칙만이 끝낼 수 있다. 이상하지만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이 싸움은 한쪽이 쓰러지거나 종이 울려야 비로소 끝난다.
인간은 평생 크고 작은 싸움을 한다. 원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변함이 없다. 인류의 역사를 투쟁의 역사라고 하지 않던가. 과연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본능? 독재자의 야욕? 영토의 확장? 제국의 건설? 재물약탈? 인종청소? 군산복합 무기판매?...... 전쟁에는 아군과 적군, 전투수행자와 지원자, 구경꾼이 있다. 미디어는 전투수행자인가, 지원자인가, 촉진자인가, 훼방꾼인가, 구경꾼인가?
1995년 11월 4일, 강원도 인제군 연하동 계곡에 싸늘한 검은색 주검이 숲 속 전나무 아래 누워 있었다. 처음 본 순간 사람이 아닌 마네킹이라고 생각했다. 검은 옷을 입은 하얀 얼굴의 마네킹. 총상을 입고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간 북한 잠수함 무장공비 최후 잔당들이었다. 언론공개 현장 책임자인 나는 주위에다 대고 소리쳤다. “저기 뭘 좀 갖다 좀 덮으세요.” 누군가가 정부미 쌀 포대를 가져와 죽은 얼굴과 상체를 덮었다. 검은 전투화, 검은 다리는 가려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득달같이 기자가 주위를 에워싸고 사진기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방송카메라가 돌아갔다.
“이거 포대 좀 치워 주세요. 여기서 리포터 하려고요.” 한 방송기자가 마네킹 같은 주검 바로 옆에 쭈그리고 앉으며 내게 소리쳤다. 나는 순간 화가 났다. “아니 뭐 하는 거예요. 안됩니다. 북한한테 죽은 얼굴 확인시켜 줄 일 있어요?” 감정이 섞여 날카롭게 튀어나간 내 목소리 탓인지 기자는 시큰둥한 표정이 되더니 더 이상 요구를 하지 않았다. 나는 대신 주검 옆에서 그 당돌한 기자가 리포터를 마친 그 자리에 조용히 뒤에 서있던 한 기자를 끌어다 앉히며 여기서 리포터 하라고 일러주었다. 서로 경쟁하는 미디어의 속성 상 어느 한 곳만 단독 그림을 허용해선 안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렇게 했다. 그때 그 현장은 미디어나 당국자 모두에게 죽음이 구경거리, 흥밋거리, 취재대상이 되던 곳이었다. 공포나 슬픔 따위는 어디에도 없고 승리와 축제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흥분과 분주함이 계곡을 가득 메웠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린 슬픔과 분노, 허기에 차 있었다. 저 검은 주검들이 쏜 총탄에 아군 대령(후에 장군으로 추서 진급) 한 분과 여러 장병, 군견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다. 게다가 대령과 군견이 쓰러진 현장에는 검붉은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는데 우린 그 옆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아 마을에서 긴급 조달한 식은 밥을 라면국물에 말아 허기를 채워야 했다.
패자와 승자의 위치, 산 자와 죽은 자의 세상이 아주 가까이 서로 마주하고 있었는데 승리의 기쁨, 산 자의 허기, 패자와 죽은 자의 침묵, 구경꾼들의 소란함이 공존하는 것을 나는 그해 똑똑히 목격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언제든 열전으로 변할 수 있는 한반도의 정전 상태…
미디어는 전쟁을 최대 최고의 뉴스현장으로 인식한다. 거기에 전쟁의 참상이 있고, 상상초월의 폭력이 있다. 무수한 죽음, 산산이 부서진 뼈와 살, 아이를 잃은 엄마, 엄마를 잃은 아이, 쓰고 써도 다 쓸 수 없는 어마어마한 스토리가 있다. 이런 죽음과 파괴현장이 뉴스가 되고, 시청률이 되고, 명예가 되고, 돈이 된다. 미디어에게는 놓칠 수 없는 곳이다.
나는 오랫동안 미디어를 지켜봤다. 한 때 미디어 기관을 경영해 보기도 했다. 비록 전투현장에는 직접 참가하지 못했지만 최전선을 지켰고, 강릉지구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참가했다. 연평도 포격도발, 아덴만 여명작전을 가까이서 겪었다. 이라크 해외파병을 다녀왔다. 그러면서 전쟁과 미디어 관계는 나의 잡 Job이자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주제였다. 얼마 전부터 한 대학에서 같은 제목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데 강의 준비를 하면서 살핀 내용과 그간 경험을 토대로 총 30화를 쓰고자 한다.
목차는 정했지만 어디까지 어떻게 쓸지 나도 모른다. 산을 오를 때 산만 목표로 하고 가지 거기에 있는 나무와 바위, 오솔길을 누가 상상하며 가겠는가. 안다고 다 쓸 수 없는 사정도 있다. 하지만 무작정 출발해 보려 한다. 문을 나서야 무엇이든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독자 여러분도 저와 같은 심정이길 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