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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가 Jun 29. 2021

폰이 멈추고 주위가 보였다.

갑자기 폰이 이상하다.

막 버스를 타자마자 확인한 폰은 이상한 메시지만 뜬다.


[SIM 카드 삽입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SIM 카드를 삽입하세요]


바로 114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는다.

sim 카드가 안되면 전화가 아예 안 되는구나.


꼭 통화할 일이 있을 때 이런 일이 터진다.

보험 문제로 통화할 일이 있는데...


다행히 와이파이는 되는 버스 덕분에 카톡은 겨우 할 수 있었다.

급하게 언니에게 sos를 친다. 대신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달라고, 전조증상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통신사의 문제인가 싶었다.


한참 있다 통화품질 부서에 접수는 됐는데, 순차대로 전화를 준다고 한다. 나는 전화가 안돼서 언니 폰으로 대신 받아달라고 말했다.


일단 보험일을 처리하고, 왠지 고객센터에서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 그냥 서비스센터를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근처에 삼성 서비스센터가 있던 게 기억이 났다.


접수를 하고 폰이 고쳐지길 기다렸다. 한참 후 호명을 받고 마주한 엔지니어의 표정이 좋지 않다.

불길하다. 그리고 여기서 처리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나는 당황했다. 여기서 못 고치면 어떻게 하냐고, 왜 이런 거냐고.


이유는 불명이라 한다. 폰이 어떤 이유로 내 유심을 인식 못한다고 말한다.

유심을 인식 못해서 내 번호가 없어진 거라 말했다.

그리고 다른 유심을 끼워 확인시켜줬다. 다른 유심을 끼우니 새로운 번호가 떠있다. 안타깝게도 유심은 서비스센터에선 등록이 안된다는 말을 한다.

통신사 직영점으로 가란다.


나는 바로 물었다. 혹시 근처에 u+통신사가 어딨는지 아시냐고...

폰이 안되니 검색해서 찾을 수가 없다고.


조그마한 폰 하나 고장 난 걸로 이렇게 답답하다.

서비스 센터를 나와서 길을 걷는데, 이상하게 통신사가 한 군데도 보이지 않는다. 꼭 찾을 땐 그 많은 가게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그렇다. 다들 왠지 모르게 바빠 보인다.

두리번거리며 십분 넘게 걸었나, 신호등에 서서 기다리는데, 반갑게 반대편에 kt통신사가 있다. 같은 통신사 가게를 발견한 것만으로 반은 찾은 기분이다.

저기라면 u+ 통신사가 어딨는지 알지 않을까, 초조하게 신호가 바꾸길 기다린다. 유난히 신호가 길다.

왕복 8차선 사거리라 그런가, 내가 원하는 신호는 하필 맨 마지막에 바뀌는 모양이다.


내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다.


신호가 초록불이 됐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길을 건넌다. 내 옆에 서있는 다른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신호를 잘못 본거 아닌지 다시 확인했다. 확실한 초록불이다. 슬쩍 뒤를 바라보니 사람들이 뒤늦게 움직인다.


그리고 kt에 막 들어가려는데, 반대편 건너편에 멀리 u+매장이 보인다. 이런, 괜히 건넜다. 오늘 많이 걷는다 생각하며 나는 다시 길을 돌아 건넜다.


이제 됐다. 그렇게 찾던 매장을 발견하고 기뻐서 큰 발걸음 소리를 내며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난 다시 한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끝이 아니었다. 신분증이 필요하단다. 생각지 못했다.

유심칩이 개인정보라서, 신분증 없이는 팔 수 없단다. 난감하다. 나는 평소 폰에만 카드를 넣어 다닐 뿐이다.

물론 페이로 말이다. 신분증은 집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다.


내가 사진으로 대체 안되냐고 하니,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직접 스캔해야 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한참 헤매다 찾은 만큼, 허탈함과 짜증이 올라왔지만, 괜히 직원에게 화풀이를 할 수는 없었다.

한숨을 내쉬고, 혹시 내가 사는 동네에도 직영점이 있는지 확인했다. 혹 다시 나와야 되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있다는 말에 안심하고 매장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 신분증을 챙겨 다시 나와야 한다.


더운 날씨에 마구 걸어 다니다 보니 땀이 흐른다.

어차피 집까지 가야지 해결되니, 오히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가만히 서 있을 땐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며, 걸어가면서 폰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번 신호에서도 내가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간다. 사람들이 뒤늦게 날 따른다.

나도 이제껏 저러지 않았나. 괜히 허전한 손으로 가방끈을 매만졌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신분증을 챙겨 집 앞에 수많은 휴대폰 매장 중 한 곳에 들어갔다. 동네에만 휴대폰 매장이 10개는 넘었다.


처음 들어간 매장이 바로 직영점이었다. 신속하게 유심을 등록해주고 다시 번호를 찾은 나의 폰을 돌려줬다.


집에 와 고객센터에서 온 수많은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내 폰으로 전화가 안되니 언니 폰으로 전화 달라고 말을 전해지지 않은 건가.

통화가 안되니 문제가 있을 시 전화 달라는 문자까지 와있다.

이미 6시가 넘은 시간이다. 그럼에도 최대한 도움을 주려한 흔적이 보인다.

어차피 고객센터에서 해결안 될 일이었지만 대기업의 확실한 서비스가 느껴진다.


오늘 하루, 폰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한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폰에 의지했는지도 말이다.  

그동안 검색만으로 쉽게 찾았던 수많은 정보들, 내 카드들, 하루 종일 폰만 보던 시간들.


새로운 걸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길을 가다가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들, 신호를 건널 때 폰을 보지 않고 주위를 확인하는 당연함, 그리고 신분증의 중요성.


정말 신분증은 앞으로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꼭 챙겨 다녀야지.


유난히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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