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식을 한다. 나이를 하나 둘 먹어도 싫어하는 음식은 끝까지 먹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먹어 보라고 해도 나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안 먹어."
일명 초딩 입맛이라고 할까. 먹는 것에 대해선 나는 고집스러웠다.
몇 년 전, 엄마가 준비한 저녁 반찬으로 애호박전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자태에 그전까지 손을 대지 않았던 애호박전에 나의 젓가락이 절로 갔다.
입에 한입 베어 먹자마자 나는 인상을 썼다. 씹는 식감이 물컹하니 나랑은 맞지 않았다. 그 하나를 먹고 다시 나의 젓가락이 그쪽으로 가는 일은 없었다.
얼마 전 다시 저녁 반찬으로 애호박전이 올라왔다.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애호박전에 관심이 없는 나였기 때문일까.
이번 애호박전은 전이랑 달랐다. 엄마가 기분을 낸 건지 홍고추까지 예쁘게 잘라서 모양을 내어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맛없었던 그때의 기억이 흐릿해 나는 다시 한번 젓가락을 움직였다. 가장 예쁘게 구워진 애호박전 하나를 집어 한입 베어 먹자 입안에 느껴지는 달달하고 고소한 맛.
'어라? 맛있네.' 그렇게 느끼자마자 두 개, 세 개고 연달아 집어 먹었다. 전에는 기분 나쁘게 느껴졌던 물컹한 식감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맛있으니까. 그냥 맛있게 먹었다.
나이를 더 먹고 먹은 애호박전은 그때랑은 달랐다. 애호박이란 채소가 몇 년 사이 더 맛있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채소 자체가 맛있게 변한 건 아닐 거다. 변한 건 나의 입맛이겠지.
이젠 애호박전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된 나는 초딩입맛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입맛이 바뀐다는 말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점점 먹을 수 있는 게 늘어나면서,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왠지 씁쓸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이다.
다시 몇 년 후에는 싫어하는 가지도 맛있게 먹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