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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가 Jul 18. 2021

농구부와 포켓몬스터 빵

 초등학교 4학년 때 잊지 못하는 추억이 있다. 새 학기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나는 여자 농구부에 스카우트됐다. 지금 친구들에게 말하면 "정말이야? 네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럴 수밖에. 지금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키가 작다. 그런 내가 여자 농구부라니, 내 말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뒤따라 올 수밖에 없다. 내가 뽑힌 이유는 순전히 농구부 코치의 선택이었다.


그때 농구부 코치는 반마다 돌아다니며 부원을 뽑았는데, 마침 내가 그의 눈에 띈 것이다.

내가 농구공으로 화려한 슛을 날리는 걸 봤다거나, 뛰어난 운동신경을 보여서라든가,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키로 한 번도 고민한 적 없는 아이(반 여자 아이들 중에서 두 번째로 키가 컸다)였고, 농구부 코치가 부원을 뽑는 기준은 오로지 키. 하나였다.


 반에서 제일 키 큰 사람을 물어보던 그는 내 앞에 서자마자 바로 농구부에 가입하라는 말을 했다. 나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나는 책 읽는 걸 제일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으로, 운동에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하물며 농구 같은 전문적인 운동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코치는 끈질겼다. 무작정 일단 가입해서 훈련해보고 생각하라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코치도 참 막무가내였다. 고작 11살 어린아이에게 억지로 밀어붙이다니.


 그렇게 나는 예상치도 못하게 여자 농구부에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농구부 활동은 생각 이상으로 더 귀찮았다. 아침 연습, 방과 후 연습. 처음 해보는 훈련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연습은 초등학교 흙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농구 골대가 있는 곳에서 슛 연습을 했다. 그때 처음으로 레이업 슛을 배웠다. 여러 번 실패 끝에 결국 슛을 성공했다. 여러 번 슛이 들어갈 때마다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방과 후 훈련은 근처 여자 중학교 체육관에서 했다. 여자 중학교엔 전문 농구부가 있었다. 유니폼을 갖춰 입고 있는 여자 농구부가 훈련하는 옆에서 우리는 어설프게 훈련을 했다. 체육관을 여러 바퀴 돌고 나서 각자 농구공을 가지고 드리블 연습을 하고, 패스 연습을 했다.


 처음엔 조금 재미있었다. 체육관 바닥에 농구공을 튕기는 것도, 패스하는 것도.

 흙 운동장에서와 다른 드리블과 뻥 뚫린 넓은 운동장이 아닌 체육관에서만 가능한 패스 연습이었다.  

 재밌다는 생각도 얼마 가진 않았다. 원래가 운동 체질이 아닌 나는 금세 농구가 질렸다.


 그만두면 농구부의 힘든 훈련에서 해방되지만, 나는 바로 농구부를 그만둘 수 없었다. 보상 때문이었다.

방과 후 연습이 끝나고 중학교 앞 문방구에서 보상으로 공짜빵을 골라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농구부 연습을 한 첫날, 이 예상하지 못한 빵의 유혹에 넘어가 매일 힘든 훈련도 참아낸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그땐 포켓몬스터 빵이 유행이었다. 여러 종류의 빵 안에 포켓몬 스티커가 들어있는데, 그걸 모으기 위해 일부러 빵을 사 먹기도 했다. 포켓몬스터 마니아였던 나는 좋아하는 캐릭터가 많았다. 피카츄, 잠맘보, 꼬북이, 고라파덕 등등 그때 유행이었던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공짜로 모으는 재미와 덤으로 맛있는 빵도 먹고, 어린 나에게는 그걸로 충분한 보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힘든 농구부 훈련을 공짜 빵에 힘으로 견뎌냈다.

 두 달 정도 지났을 땐, 조금 힘들어지긴 했다. 잠이 많은 나에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방과 후에 훈련을 하는 것도 점점 인내심에 한계치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훈련 후의 달콤한 빵의 유혹에 계속 참고 참아냈다.


 이것만 끝나면 빵을 먹고 스티커를 모을 수 있다. 그 생각으로 버텼는데.... 일이 터졌다


 중학교 체육관에서 늘 하는 패스 연습시간이었다. 다른 반 친구가 던진 농구공이 정확하게 내 얼굴에 명중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별을 봤다. 지금은 그 친구의 얼굴하고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짧은 쇼트커트 머리였다는 건 기억한다. 그 친구의 실루엣만 기억날 정도로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 남아있다.


 맞은 충격에 얼굴을 부여잡고, 뒤늦게 느껴진 통증에 눈물이 났다.

던진 친구도 다른 부원들도, 코치도 내 주변으로 다가와 괜찮은지 살폈다. 다행히 이가 나갔다거나, 코가 부러졌다거나, 얼굴에 크게 멍이 든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난 농구공에 맞은 충격에 울면서, 더 이상 연습은 못하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빵의 효과가 끝났다.


그다음에 바로 농구부를 그만뒀다. 코치님은 날 붙잡았지만 나는 이제 공이 무서워서 못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코치님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농구부를 그만둔 감상은 하나뿐이었다. 이제 포켓몬스터 빵은 용돈으로 사야 되겠구나. 공짜로 모던 포켓몬스터 스터커들이 아쉬웠지만, 농구공의 묵직한 무게를 얼굴로 받고 나면, 먹을 거의 유혹은 아픔에 졌다.


이제와서는 조금 후회는 있다.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았나. 조금 더 열심히 농구부 활동을 했었으면 어땠을까.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계속 농구부를 했다면 시합도 나가보고, 상대팀과 부딪히며 경쟁하고, 승부욕도 강해지고, 슛도 던져보고 그런 경험이 날 강하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여전히 멘탈 약하고 엄살이 심한 나이기에 그 일 아니더라도 오래는 못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리고 하나 더 아쉬운 건, 계속 농구를 했다면 키가 더 크지 않았을까.

평균보다 작은 키에 더 클 수 있는 가능성을 놓친 것에 조금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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