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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가 Aug 15. 2021

비 그친 밤의 외출

'아차! 깜박했다.'

도서관에서 온 메시지를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일요일 밤은 공연히 기분이 가라앉았다.

월요일 출근 때문이다. 행복했던 주말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일할 땐 그렇게 가지 않는 시간이 마치 총알처럼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일요일의 아쉬움에 누워서 버둥거리다가 확인 안 한 메시지로 잠시 관심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쌓인 메시지 중 나의 관심을  끈 건 도서관에서 온 것이다.

[대출 도서 연체 안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일주일 전에 다 읽은 책인데, 일에 지쳐 뻗어버린 매일을 보내는 사이 어느새 지나가 버린 반납 날짜였다.

시간을 확인하니 밤 10시를 갓 넘겼다.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지금 갖다 주지 않으면 다시 일주일이 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혹 이 책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미안한 일이다.

잠옷으로 입고 있던 츄리닝 채로 푹신한 꽃무늬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도서관은 집에서 걸어서 오분 거리라서 늦은 시간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정신없이 일하며 보낸 사이 대여기간이 지나간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길.

조용한 길가에 가로수의 초록색 나뭇잎들에 검은 그림자 드리워져 있다.

익숙한 길을 나는 서둘러 걸었다.


도착한 도서관 앞에 아주머니 두 분이서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옆을 스쳐 지나가면 괜히 귀를 쫑긋하게 되지만 무슨 주제로 얘기 중인지 들리지 않았다.

아주머니 한 분의 손에 들린 책이 눈에 띌 뿐이다.


계단을 성큼 걸어올라 가자, 무인 반납 기계 앞에 웬일로 먼저 온 사람이 있다.

그동안 수없이 무인 반납 기계를 이용해 왔지만 다른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다.

나처럼 밤늦게 책을 반납하러 오는 사람이 또 있네. 공연히 반갑다.

혼자는 아니다. 어린 여학생 두 명이다. 아마 고등학생쯤 되어 보인다.

긴 머리를 묶고 책가방을 맨 학생이 책을 반납하고 있고, 복슬복슬한 흰털의 강아지를 데리고 온 친구가 따라와 준 것 같다. 강아지는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왔지만 주인인 여학생은 서둘러 강아지를 품에 안고 멀찍이 피한다.

요즘 개 물림 사고가 많아서 조심하는 건가 싶다. 하지만 강아지를 좋아하는 나는 조금 아쉬움을 느꼈지만, 티를 내지 않고 가만히 거리를 두고 책을 반납하는 학생의 뒤에 서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여학생은 가방에서 책을 계속 꺼내서 반납하고 있다.

화면에 뜬 책의 제목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여러 책의 제목을 보며 여학생의 취향을 알게 됐다.

학생치고 꽤 어렵고 두꺼운 책들이다.


오래 걸린다 싶었는데, 마지막 메시지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 졌다.

총 10권의 책을 반납했습니다.

10권이라, 2주 동안 다 읽은 건가. 대단한 독서량이다.

내가 본 건 7권인데, 그중에 내가 읽은 책은 하나도 없다.


정말 저 많은 걸 다 읽은 건가? 혹 나처럼 기간이 지난 건 없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책도 같이 반납한 걸까?

괜히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궁금증이 들게 만드는 책의 숫자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어둠 속에 보이지 않은 학생들과 강아지가 짖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난 한 권의 책을 반납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섰다.

도서관 옆 아주머니 들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

똑같은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하루 종일 내린 비가 그친 밤의 공기가 상쾌하다.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지나가며 나는 여름이 다 지나갔음을 느꼈다.

비 그친 밤의 공기가 너무 좋아 시간만 늦지 않았다면 산책하고 들어갔을 것인데, 늦게 나온 아쉬움에 나의 걸음은 처음과 다르게 느려졌다.

잠깐의 기다림도 기분 좋게 보냈다. 잠깐의 밤 외출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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