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집에선 가족과 함께, 직장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약속은 늘 친구들과 어울러 만난다.
늘 주위에 사람들과 어울러 살아가던 내가 온전히 혼자 있게 된 첫 순간은, 내일로 여행이다.
나는 사람들에 샌드백처럼 이리저리 치이던 첫 직장을 2년 만에 그만두고 뭘 할지 고민하다가, 충동적으로 혼자 내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침 내일로 티켓을 구매 가능한 시기이기도 했고,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했던 내일로 여행의 기억이 좋았었고, 그때의 경험으로 첫 혼자 여행이라도 두렵지 않아 한 선택이다.
사실 애매한 시기에 그만두어 같이 여행 갈 친구가 없기도 했지만, 그동안 사람들에 치여 힘든 시간을 보내서 인지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동안 사회생활에 나의 쿠크다스 멘탈은 속수무책으로 잘게 부서져 있었다. 이 여행으로 나는 다시 부서진 멘탈들을 원래대로 회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맞는 처방전이었다.
티켓을 구매하고 기차 시간에 맞춰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내일로 티켓으로 탈 수 있는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기차 노선도를 보고 가고 싶은 곳을 정했다. 그다음 아울렛에 가서 두툼한 검은색 사파리 야상과 배낭 하나를 샀다. 배낭에 일주일치 옷과 필요한 여행 준비물을 챙겨 넣었다. 배낭 하나 메고 혼자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엔 혼자 하는 모든 것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기차를 타도 내 옆자리엔 아무도 없다. 정말 혼자라는 걸 느낀 첫 순간이다.
첫 여행 목적지는 강원도 영월이었다. 기차역 근처 숙소를 찾아가는 것도, 숙소에 짐을 풀고 계획대로 관광지에 가는 것도. 혼자서 하는 식사도,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도 모든 것이 즐거웠다. 걱정과는 달리 혼자라도 여행을 나는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사진도 맘껏 찍고 아무 걱정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왠지 모를 오싹한 기분에 숙소 곳곳을 꼼꼼히 살핀다. 옷장을 열어보고 화장실 문을 열어보고, 심호흡 한 번하고 침대 밑을 살폈다. 나는 그 순간 무서웠다. 그동안 나는 집에서 온전히 혼자서 지낸 적이 없었다. 정말 나는 혼자다. 낯선 영월의 숙소에서 깨달았다. 씻고 누워도 쉽게 잠들 수가 없다. 어두운 방 안에서 눈동자를 굴리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지는 않을지, 왜 이렇게 주변이 고요한지. 내가 베고 있는 높은 베개도, 덮고 있는 두툼한 이불도 모든 것이 불편하고 어색하다. 한참이 지나서 겨우 잠이 든다.
아침에 일찌감치 눈이 떠진다. 평소 잠이 많은 나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러 개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눈을 뜬다는 것은. 낯선 환경과 혼자라는 사실 때문인지 고쳐지지 않았던 나의 고질병 같은 늦잠은 말끔히 사라졌다.
며칠 동안은 숙소에서 잠잘 때만 빼면 혼자인 것도 나쁘지 않다고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는 게 맞다. 눈치 볼 게 전혀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과 여행할 때와 다른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쉬고 싶을 때 아무 데나 앉아서 쉬고, 셀카도 지겹게 찍었다. 그리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해 먹을 수 있었다.
결정 장애인 줄 알았던 나는 혼자일 때는 어딜 가든 뭘 먹든 망설임이 없었다. 그랬다. 나는 늘 주변 사람들의 선택에 신경 쓰느라 나의 선택을 당당히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잠시 동안 결정장애가 사라진 일주일이었다.
그리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 좋았다. 앞으로의 나의 미래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혼자 숙소에 있을 때는 즐거운 기분이 달라진다. 대신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었구나. 혼자서도 문제없다고, 무서운 건 없다고 생각하고 여행을 왔는데, 홀로 잠들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온전히 마음 편히 잠든 날이 없었다.
혼자 여행의 즐거움은 계속 이어지진 않았다.
어느 순간 정말 내가 사회화된 인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사일째는 점점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입에 거미줄 치는 게 이런 느낌인 건가 깨닫게 된다. 괜히 휴대폰에 시선이 간다.
말을 하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순서대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친구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평소 내가 먼저 전화를 건 적이 별로 없어서 말이다.
마지막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좋은 경험이자, 내 삶에 많은 깨달음을 주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하루 이틀은 혼자 여행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3일을 넘어가서는 혼자는 힘들다. 혼자 여행은 이번 경험으로 충분하다. 이젠 긴 여행은 혼자서 떠나지 말아야지. 속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나의 결심이 깨진 건 그로부터 2년 후다. 나는 혼자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