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친구가 사준 다이소 해바라기 키우기 키트가 있다. 화분과 흙, 해바라기 씨. 단출하다. 이천 원. 가격까지 합리적인 것 같다.
하지만 이걸 받기까지 나는 상당한 고민을 했다. 나는 식물을 키우는데 재주가 없는 건지, 늘 내 손에 들어오는 식물들을 죽이곤 했다.
이번에도 여러 차례 친구가 키워보라는 말을 거절했다. 나는 키우면 안 된다고. 아니, 키울 자신이 없다고, 분명 죽여버릴 거라고. 나는 앞서 작은 다육이들과 작은 선인장을 죽인 기억이 있다.
선인장을 죽인 이후로는 절대 식물을 키우면 안 되겠구나. 다짐했다. 말라비틀어져 가시에 손 만대도 전혀 아프지 않았던 힘없던 선인장의 최후를 기억하며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친구는 자신이 먼저 키우는 사진들을 하나 둘 일주일에 한두 번씩 나에게 보내며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확실히 쑥쑥 잘 크는 해바라기 싹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마치 내가 키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해바라기를 보며 신기하기만 했다. 해바라기 키우기는 수월해 보였다. 원래 이렇게 잘 크는 건가? 혹시 나도? 이번엔 괜찮지 않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친구는 생일에 밥을 사주면서, 이것도 한 번 키워보라며 다이소에 가서 팜팜 가든 해바라기를 사서 내 손에 들려주었다. 앞서 쉽게 잘 크는 해바라기를 봐서 그런지 조금 마음이 동했던 난, 고마워 말하며 해바라기를 받았다. 왠지 모를 용기가 솟아나 있었다. 이번엔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해바라기 키우기는 시작되었다. 너무 쉬웠다. 흙을 화분에 담고, 1cm 아래에 해바라기 씨앗 두 개를 심으면 된다. 물은 듬뿍 주고. 이름을 지어줬다. 해님. 그렇게 나의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정확히 일주일 후에, 귀엽게 올라온 새싹을 발견했을 때의 감동이란.
얘가 이렇게 힘을 내서 싹을 틔었구나. 생명의 신비를 느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해님을 관찰하며, 이래서 식물을 키우는 건가.
해님한테, 빨리빨리 자라라고 말하면서 물을 주고 있다. 묘한 성취감이 느껴진다.
쑥쑥 크다 보니 가느다란 줄기는 휘청휘청한다. 나는 일단 나무젓가락을 지지대로 삼아 본다.
나무젓가락이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 같다.
한동안 해님은 나무젓가락에게 의지해 잘 자랐다.
어느새 키가 훌쩍 커버린 해님은 나무젓가락이 감당하긴 힘들어졌다.
나는 서둘러 다이소로 달려갔다. 거기서 기다란 지지대를 샀다.
작은 화분에 비해 너무 길어 보이지만, 친구의 해바라기도 똑같은 걸 하고 있던 걸 기억해 나는 겨우 화분에 고정시켰다.
새로운 지지대에 물만 주는데도 쑥쑥 잘 자라는 해님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물을 듬뿍 주고, 한동안 정신없어서 해님을 잊고 있었다.
나는 친구가 꽃을 피웠다고 보여준 해바라기 사진을 보며 아차 하며 나의 해님에게 달려갔다.
베란다 창가에 놓아둔 내 해바라기는...
어느새 파릇파릇했던 잎이 팍 죽어있었다.
커다란 잎들이 볼품없이 시들어 힘을 잃고 축 쳐져서 말이다.
나는 좌절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을 다시 한번 듬뿍 주었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해님은 변함없었다.
역시나 죽은 건가.. 난 씁쓸해하며 일주일 사이 일분의 시간이라도 내어 해님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날 원망했다.
그리고 해바라기를 사준 친구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도 민망해서 며칠을 숨겼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숨길 순 없는 법. 결국 만난 친구에게 나는 사실을 고백했다.
친구는 시들어진 건 괜찮다고 물을 주면 다시 살아날 거라 날 위로한다.
이미 물을 듬뿍 준 뒤였지만 조금 더 기다려 본다 말했다.
결국 내 손에선 되살아나지 못한 해님과 나는 아쉬운 이별을 택했다.
다음에 다시 한번 키울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좀 더 정성과 사랑을 다해 키워 줄게, 꽃을 피울 수 있게 도와줄게. 미안하다. 해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