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하고 좌절된 사랑과 이상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by 김선우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첫 문장에서 서술자 영수는 사람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보는지 밝힌다. 이어 사람들은 아버지의 겉모습만 제대로 볼 줄 알았지 지옥에 살면서 날마다 천국을 생각하는 자기들의 생활은 모른다고 말한다. 영수네 가족은 어느 날 서울시로부터, 재개발지구로 지정되었으니 정해진 날짜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철거하겠다는 철거계고장을 받는다.


이 소설은 재개발이 되지만 돈이 없어 입주권을 팔 수밖에 없는 난장이 가족이 더 지옥 같은 삶으로 내몰리는 과정의 이야기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2편의 단편을 모은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의 네 번째 단편 소설이다. 난장이는 1970년대 도시 빈민, 노동자, 사회적 약자를 상징한다.


조세희(1942~2022) 작가는 발간 3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아직도 이 소설이 읽히고, 공감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에 마음 아파했다. 우리 현실이 1970년대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해서이다. 이 책이 출간된 지 46년이 넘었지만,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난장이네 아이들이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해야 했던 상황과 비교하면 더 많은 권리가 주어지고 풍요로워졌다. 그럼에도 중대산업재해로 지난 10년 동안 2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죽었다는 수치를 보면 크게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난장이 김불이가 사랑으로 통치하는 법이 있는 나라를 꿈꿨다면, 영수는 교육으로 누구나 고귀한 사랑을 갖게 하는 세상을 꿈꿨다. 그러나 그들의 이상과 사랑은 좌절되었고 패배했다. 노동 운동을 하다 절망한 영수는 사장을 죽이려다 그와 닮은 동생을 죽여서 사형당한다. 살인자 영수만 죄인이고 그를 그렇게 만든 회사와 사회는 죄가 없을까?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월급, 질병과 위험에 노출되는 작업현장에서 직간접으로 죽어가도록 대우하는 회사와 사회는 책임이 없는가? 현실은 앞면과 뒷면, 안과 밖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난장이의 막내딸 영희는 자기 집의 입주권을 사 간 남자를 따라갔다가 순결을 빼앗기고 그의 일을 돕다가 그에게서 자기 집 매매문서를 훔쳐 온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라고 절규한다. 영희의 절망과 분노가 슬픈 것은 그들은 자기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가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거나 다른 이의 목숨을 대가로 유지되는 사회라면 이 풍요와 발전이 과연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것일까?


이 작품은 1970년대 산업화, 개발 시대의 난장이 가족의 삶을 통해 고도성장의 그늘 속 고통받는 약자들의 현실을 드러냈다. 현실 참여적인 리얼리즘과 미적 가치, 형식적 실험을 중시하는 모더니즘 두 요소를 성공적으로 결합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소외계층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내용은 사실적이지만 ‘선과 악, 가진 자-못 가진 자, 빈곤-풍요, 지구-달나라’와 같은 대립적 세계관을 우화적, 은유적, 상징적으로 서술했기 때문이다. 12편의 단편에서 난장이 일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을 서술자로 내세워 그들의 상황과 고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1978년 초판 출간 이후 꾸준히 팔리며 한국 현대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판매 부수 150만 부(325쇄)를 돌파하였다. (2024년 2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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