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최인훈
《광장》(1960)이 《새벽》에 발표된 이후 여덟 번의 개작이 이뤄지는 동안 첫 문장도 여러 번 바뀌었다. 초판의 첫 문장은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척이면서 숨 쉬고 있었다.’ 민음사판은 ‘바다는 숨 쉬고 있다.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문학과지성사 전집판은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이다. 전집판 첫 문장은 초판과 비슷하지만 쉼표 세 개를 찍었고 서술어가 현재형이다. 쉼표는 호흡을 끊어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읽게 하고 현재형 서술어는 바다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첫 문장은 중립국으로 가는 배 타고르호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보는 바다에 대한 묘사다. 그 바다는 《장자》소요유편의 대붕 우화에 나오는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 곤(鯤)이라 하는 물고기를 연상시킨다. 단순히 파도가 이는 바다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바다. 나아가 생명의 바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명준은 이 바다에 몸을 던진다. 광복 이후와 6.25전쟁 시기에 남북한 체제 속에서 진정한 ‘광장’과 ‘밀실’을 찾지 못한 그가 선택한 곳이 바다다. 타고르호를 내내 따라왔던 두 마리의 갈매기를 명준은 낙동강 전선에서 죽은 은혜와 은혜의 배 속에 있었던 자신의 딸이라 여긴다. 바다는 그 갈매기들이 노니는 ‘푸른 광장’이다. 그리고 첫 문장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바다는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물의 원형적 이미지인 생명과 부활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명준의 죽음을 현실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사랑을 선택함으로 얻은 구원이라 믿고 싶다. 사회적 존재로서 살기 위해 필요한 ‘광장’과 개별적 존재의 고유성을 유지하게 할 ‘밀실’을 이념의 세계에서 찾을 수 없었을 때 그에게 남은 사람살이의 의미이자 참다운 가치는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바다는 그에게 사랑하는 존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진정한 광장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이명준이 바다로 뛰어들 때 보여준 평화로운 모습을 통해 이념이 아닌 사랑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 것은 아닐까?
《광장》은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의 이념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다. 불과 스물여섯의 최인훈(1934~2018)이 이념과 사랑에 대해 이토록 지적이고 세련되게 표현한 것이 놀랍다. 문학 평론가 김현은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였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광장》은 4.19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학이 현실에 어떻게 대응하고 길을 모색하는지를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통쇄 204쇄 70여만 부(2018년 7월 기준)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