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쁨 나의 기록: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기록
아이 사망 전후 입원 생활은 제법 할 만했다. 아기 용품으로 가득한 집보다는 낯설고 단정한 공간에서 익명 환자 1로 지내는 게 오히려 나았다. 의료진은 하나같이 친절했고, 밥도 맛있었다. 나는 밥을 못 먹거나 굶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맛있게 먹었고, 아침마다 남편이 나가서 사다 주는 달달한 오트 라테와 크루아상도 죄책감 없이 즐겼다. 사실 나는 신과 다투고 있었다. 뭐, 내가 그럼 식음 전폐하고 아무것도 못하며 당신만 찾을 줄 알았어? 그 무렵부터 나는 그를 신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도 싫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 내가 누구보다 사랑했을 완벽한 대상을 3일 만에 뺏겼는데 더 두려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누구보다 의연하고 정갈한 척, 병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의료진에게 깍듯하게 굴었다. 그 누구에게도 흠 잡히고 싶지 않았다.
조금 놀랐던 건 내 주치의 태도였다. 당연히 나만큼은 아니었겠지만, 그녀 역시 이 일로 적잖은 심리적 타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내 상태를 정말 살뜰히 챙겨주었다. 그동안 진료를 받아오면서 나는 늘 그녀가 좋았으나 (대부분의 의사가 그렇듯이) 조금은 냉정한 모습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쁨이 사망 이후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내 상태를 봐주고,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수 앞서 생각해서 처방해 주고자 했다. (면회/외출, 단유약, 수면제, 정신과 진료 예약 등등...) 주치의는 기쁨이가 떠난 날에 혼자 있던 내 입원실에 와서 절절히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는데 사실 내용은 별로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그가 내 손을 얼마나 세게 쥐고 있었는지는 잊히지 않는다. 내 손가락이 다 아플 정도였다. 진심은 그런 식으로 통하는 법이다.
그녀는 다음날 외래가 다 끝나고 오후 시간을 비워두었다고 남편과 함께 오면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대답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이런 상황임에도 다음날 외래를 봐야 한다는 부담감을 드러냈다. 순간 내 속에서 냉소가 비집고 나왔다. 왜요, 당신 아이가 잘못된 것도 아닌데요. 속으로는 그렇게 고깝게 생각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 표정이 무척 수척해 보여서 나 역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약간의 충격이라면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주치의 입장에서도 지난 몇 달간 지켜봐 온 환자를 잃었고, 남은 환자 역시 심리적으로 몹시 취약한 상태이니 그런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진료를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 심정이 조금이나마 헤아려지자 어쨌든 같은 결의 슬픔을 공유하는 어떤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기쁨이를 잃은 것으로 인해 일상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나와 내 가족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것조차 내게는 다소 위로가 되었다. 그때 나는 위로가 0.1%라도 섞여있으면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다 먹어치우는 식이었다.
남편과 상의 후 각자 소셜미디어 계정에 기쁨이 떠난 소식을 올렸다. 그리고 페이스북이니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을 다 지울 생각이었으나 사실은 몇 시간에 한 번씩 들어가서 사람들이 남긴 댓글과 보내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솔직히 적잖이 놀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더군다나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침묵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용기 내어 마음을 전해준 이들이 놀라웠다. 그동안 소셜미디어에서 비극적인 소식을 접하는 내 태도는 어땠던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거리다가 적절한 시간 안에 적절히 위로할 기회를 번번이 놓치곤 했다. 그러고는 내가 저기에 한마디 더 보태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 본인 위주로 생각하고는 쉽게 잊어버렸다. 하지만 내 피드에는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이 남긴 글로 가득했다. 남편과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우리에게 쏟아지는 위로를 온 마음으로 느꼈다. 그들에게 나는 일평생 감사할 것이다.
여전히 신은 싫었고, 그와 화해할 수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나와 내 가족을 위해 해주는 기도는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렇게 그를 저주하더라도, 당신 품으로 돌아간 내 아기에게 보복을 할 만큼 쩨쩨한 양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 믿는 구석이었다. 그렇게 나는 신과 냉전을 벌이면서도, 어쩌면 신이 내게 주는 위로와 은총 같은 것은 거리낌 없이 받아먹었다. 나는 그에게 몰염치하게 굴고 싶었다. 신이 나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기를 바랐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일어나게 해 놓고, 나한테 할 말 없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바득바득 추궁하고 싶었다. 그 정도로 신이 너무나 미웠는데, 정말 미웠는데, 내 인생에서 그때만큼 신의 존재를 강하게, 매 순간 느꼈던 적도 없었다. 이런 게 함께 한다는 건지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