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쁨 날아올라

나의 기쁨 나의 기록: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기록

by 고래

기쁨이 입관과 화장 일정은 3일 후, 내가 퇴원하는 날로 잡았다. 막달 사산이거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먼저 보낸 비슷한 사례를 나중에 보니, 엄마 입원 중에 아빠 혼자 화장을 하는 경우도 제법 있는 것 같았다. 아기를 영안실에 며칠씩 두는 게 마음이 걸리긴 했지만, 남편과 나는 당연히 우리 둘이 함께 기쁨이를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기 입관과 화장, 그리고 유골을 뿌리는 일까지 내가 온전히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낳은 아기의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일을 끝까지 해냈다는 느낌도 회복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이 모든 과정에 엄마와 언니, 그리고 시어머니와 시숙이 우리 부부와 함께해 주었다.

퇴원 후, 아기가 안치되어 있는 대학병원 영안실로 가서 미리 와있던 양가 가족들과 만났다. 가족들은 기쁨이 사망 당일에 만사 제쳐두고 병원으로 와주었는데, 3일 만에 다시 만났다. 엄마와 언니는 우리 집에 들러 겉싸개와 애착 인형을 가지고 와주었다. 엄마 역시 미리 사둔 아기 내복을, 언니는 예쁜 꽃다발을 들고 왔고, 아기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메모지도 준비해 주었다. 우리는 각자 짤막하게 기쁨이에게 작별 편지를 한 장씩 쓰고 장례지도사에게 이 모든 것을 함께 관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입관 실로 들어갔더니 조그만 관에 우리가 준비한 옷을 어여삐 차려입은 기쁨이 누워있었다. 영안실에 오래 안치하면 부패할 수 있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아기는 여전히 편안히 잠든 모습 그대로였다. 기쁨이 주변으로 꽃과 종이 나비, 알사탕 모양으로 접은 가제수건이 조화롭게 놓여있었다. 입관 시에도 아기를 어루만질 수 있어서 모두 너무 빨리 가버린 작은 식구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기는 정말로 놀라운 존재였다. 시신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귀여워하며 한 마디씩 던졌다. 눈은 누굴 닮고, 코는 누굴 닮고, 또 얼굴형은 누굴 닮았는지 이야기했다. 그제야 우리 기쁨이 얼마나 이 가족 안에서 사랑받으며 컸을지 실감 났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기도 사랑할 수 있구나.... 가족이니까.

나는 오열하지 않았다. 입관이 가장 슬프다고들 하던데, 나는 괜찮았던 것 같다. 자녀 입관 시 엄마가 혼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장례지도사가 나를 특별히 의자에 앉혔는데 말이다. 물론 당연히 슬펐지만 나는 예전부터 죽음에 있어서 조금 초연한 태도가 있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에게 죽음 자체는 아주 나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쁨이는 온전히 사랑으로 생겨나, 태중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태어나서는 그 누구와도 불화하지 않고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만을 받다 갔다. 다만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짧아 우리는 우리의 아가를 평생 동안 그리워하겠지만, 기쁨이의 삶은 짧았던 그 삶 그대로 찬란하고 귀했다. 그 삶이 내 삶보다 못하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화장을 위해 벽제 승화원으로 가야 했는데, 떠나기 전 여섯 식구가 함께 간단히 식사를 했다. 상견례 이후 양가 식구가 이렇게 마주 앉아 식사하는 건 처음이었다. 여섯 명 모두 각기 다른 메뉴를 시키면서 이렇게나 입맛이 다른 걸 두고 웃었다. 기쁨이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낸 사람들. 기쁨은 가고 없지만, 이상하게도 이 취향도 성격도 입맛도 다른 여섯 명이 갑자기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양 가족을 혈연으로 이어주는 단 하나의 존재. 기쁨이는 그렇게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버린 것이다. 나는 우리 여섯 명 사이로 아장아장 걸어 다녔을 기쁨이의 걸음마와 앙증맞은 뒤태를 상상했다. 그건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미래였다.

화장은 정말 빨리 끝났고, 유골이 너무나 적게 나와서 '이게 다야?'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내가 9개월간 만든 뼈와 살이 한 줌도 채 안 되는 가루가 되어 나왔다. 이거 다 내가 만든 거야, 울먹이며 남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한 줌도 안 되는 유골을 용미리 나비정원에 뿌려주고 왔다. 엄마는 조금이라도 보관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서 아낌없이 뿌렸다. 사실 화장 이후부터 이제 육신마저 사라진 내 기쁨이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갔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느 정도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리고 정말로 피곤했다.)


이제 내 기쁨은 아픔이 없는 곳에서 자유롭고, 편안할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나를 토닥이며 네가 제일 고생 많다고 위로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쁨이를 임신하고, 낳을 수 있었던 게 내 인생 가장 큰 영광이었어." 평소 나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 나왔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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