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쁨 나의 기록: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기록
이제 곧 세상을 떠나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리 아기는 세상에 온 지 3일도 채 되기 전에 나도 미처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남편과 내가 기쁨이를 다시 보러 간 건 다음날 아침 9시였다. 그전에 우리는 병원과 미리 통화하며 심정지가 올 경우 소생술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아주 간신히, 아프지 않게 편히 보내달라는 청을 했다. 전화를 끊고 남편은 다시 갈등했다. 한 번은 시도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며 소생술을 포기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반면 나는 기쁨이를 존엄하게 보내고 싶었다. 아기의 몸에 무리가 될만한 것은 더 이상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안된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간 안된다는 말만 너무 많이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남편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에는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기쁨이는 긴긴밤을 끈질기게 버티고 아침에 다시 한번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기쁨이의 얼굴과 몸에 입 맞추며 무수히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혹여라도 아이가 잊을까 봐 다시 한번 더... 또 한 번 더. 나는 기쁨이의 뺨과 눈썹,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눈썹 모양과 결이 놀랍도록 남편 눈썹과 닮아있었다. 옆으로 길게 뻗은 눈매도 영락없는 남편이었다. 이토록 사랑하는 내 아이를 앞으로 보지 못한다는 슬픔이 다시 한번 치솟았다. 남편도 나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 와중에 기쁨이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눈에 담고자 했고, 우리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들려주고자 했다. 남은 시간 아이와 나눌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이었다.
나는 마침내 기쁨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기쁨아, 괜찮아. 무서워하지 말고 편히 가." 응급상황에도 용감히 태어나 엄마를 기다려준 나의 작은 전사에게 나는 존경의 입맞춤을 건넸다. 이 무서운 세상에 용감히 태어난 나의 아기. 태어나 우렁차게 울음을 터뜨렸던 아기. 힘겨운 치료 속에서 나를 기다려 준 아기. 나를 알아봐 준 아기. 나를 사랑해 준 아기.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았지만 그 시간을 치열하게 살아내 준 아기에게 부모로서는 물론 한 인간으로서 뜨겁게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기를 보고 있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이 몰려오다가도 그보다 더 거대한 사랑의 물결이 슬픔을 뒤덮었다.
기쁨이를 위해 준비해 둔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손바닥만 한 배냇저고리와 배냇 슈트, 가제수건과 속싸개, 애착 인형과 아기침대... 그뿐이겠는가. 아이에게 내 모든 것을 주겠다 다짐한 게 48시간도 지나기 전인데, 아이는 어느 것 하나 취하지 않고 떠나고 있었다. 반면 아기가 내게 준 건 기쁨뿐이었다. 불러가는 뱃속에서 사랑스러운 태동을 느끼던 하루하루, 남편과 하나둘씩 아기 용품을 모으던 추억. 찾던 물건이 중고 매물로 나오면 신나게 거래하러 가던 드라이브 길. 웃음이 날 정도로 조그만 아기 옷을 빨고 개키던 시간, 남편의 주책맞은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보며 핀잔을 주던 나와 그럼에도 좋아서 웃던 남편 모습. 기쁨이가 우리에게 준 이 큰 행복을 이제 영영 갚을 길이 없었다.
나의 기쁨은 그렇게 엄마 아빠의 작별 인사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이제 영영 숨이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보았을 때 오히려 눈물은 더 나오지 않았다. 그저 피가 식고 진공 상태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병원에서는 잠시 후 아이의 얼굴과 몸에 붙어있던 모든 튜브를 제거하고 우리가 아이를 충분히 안아볼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그제야 기쁨이와 우리 부부만 한 공간에 남았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으로 아기를 안아볼 수 있었다. 조심스레 안아 들 때 제법 묵직한 무게감에 남편과 난 둘 다 놀랐다. 기쁨이는 곤히 자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감은 눈과 편안한 표정이 아름다웠다. 아직 온기가 채 가시기 전 아이를 매만지며, 미처 들춰보지 못한 아기의 손과 발, 귀와 뒤통수를 살펴보았다. 남편과 나는 아이와 함께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하지만 그때 찍은 사진을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