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이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나의 기쁨 나의 기록: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기록

by 고래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내 기쁨이 더 이상 내 안에도, 내 곁에도 없다. 불과 3일 전에는, 아니 하루 전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 '벌어졌다'. 이미 완료되었다. 잘 훈련된 권투 선수에게 수 십 방을 무차별적으로 얻어맞아 피가 터지고 얼굴이 퉁퉁 부어 감각이 마비된, 귀도 잘 들리지 않는 지경인 그런 멍한 기분이었다. 오히려 무감각할 지경이었다. 지난 12시간 사이에 내게 일어난 일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그냥 눈 딱 감고 없었던 일로 친 다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말이 되나?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질문부터 뇌는 작동하기를 멈춘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남편과 나는 기계적으로, 능숙하게 영안실 이용을 계약하고, 화장터 예약 절차를 확인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서도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은 결코 적지 않았다. 나는 사실 기쁨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한 번이라도 우리 집에 아기를 데리고 들어와서 아기 침대에 눕혀 보고 싶었다. 꼭 아기 침대가 아니더라도 좋았다. 내 옆에 아기를 눕히고 그저 한숨 자고 싶었다.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내 말을 듣고 병원에서는 펄쩍 뛰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아기를 잘 보내주고 다음 아기 가져야지 않겠냐며 나를 설득했다. 그 말에 싸울 힘이 없어 비소만 짓고 말았는데 사실 그 표정조차 잘 지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아기를 추운 영안실에 안치할 수밖에 없었다.

진작 지어둔 이름이 있었기에 그 이름으로 장례를 치러 주고자 남편은 출생 신고를 위해 동사무소로 가고, 나는 입원실로 돌아왔다. 비스듬히 등을 대고 앉아 가슴팍에 기쁨이가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 처음 입힌 배냇저고리를 올려두었다. 어찌 보면 기쁨이가 유일하게 남기고 간 유품이었다. 아이가 떠나고 처음으로 혼자 남은 나는 배냇저고리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기쁨이 가고 없으니 이 슬픔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먼저 가버린 그 조그만 아기가 야속했다. 앞으로 이 그리움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숨이 막혔다. 2018년, 24주에 아기를 잃고 3년 동안 아기를 가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너무 상심이 컸기 때문에. 3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용기 내서 가진 아기였다. 그 아기가 내 곁을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기가 떠났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려야 한다는 것도 끔찍했다.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내 불행을 즐거워하리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럴 줄 알았다, 마음 좀 곱게 쓰지, 꼴좋다, 실체도 없는 사람들이 한 명씩 내게 다가와 나를 조롱하고 떠나갔다. 지금까지 운 좋게 살았다. 말하자면 팔자가 좋았다. 대단하게 성공한 인생은 아니어도 큰 고생 없이 결혼도 잘하고, 커리어도 잘 쌓으며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기고만장하게 살면서 가끔 어려운 일을 겪는 누군가에게 사람들의 관심과 동정심이 쏠리면 거기에 슬며시 배가 아픈 애였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 관심과 동정을 받는다 생각하니 끔찍이도 싫었다. 절대 사양이었다. 그 누가 내게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정확히는 내가 그런 위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기 빈혈은 추정컨대 아기의 혈액이 탯줄을 통해 내 몸에 다량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조그만 태아의 몸에서 혈액이 대량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너무도 위험해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그 설명을 곱씹으면서 나는 다시 울었다. 내가 너무 끔찍했다. 아기에게서 내가 피를 빼앗아 간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자식 잡아먹은 년이 따로 없었다. 그 말이 떠오르자 심장이 쪼그라들면서 돌로 변해 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로라도 나는 나를 벌주고 싶었을까. 무자비하게 비난하고 싶었을까.

아니다. 사실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 그런 거지 같은 딱지를 붙이고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다. 원수에게조차 할 수 없는 잔인한 말이었다. 나는 꺼이꺼이 울면서 속으로 외쳤다. 닥쳐, 닥쳐, 나한테 그 딴 말 하지 마. 나는 그런 원색적이고 성차별적인 비난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위로가 필요했고, 다정함이 필요했다. 그 누구라도 나에게 상처 주게 둘 순 없었다. 그게 설령 나 자신이라 할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울었지만 흐릿한 희망 같은 게 보였다. 지금까지 나는 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끈기 있게, 열심히 살았다. 운으로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내겐 어떤 순간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평소엔 잘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 그 마음은 매번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 마음이 있는 한, 나는 회복할 수 있다. 그 마음이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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