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쁨 나의 기록: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기록
퇴원을 앞둔 주말, 병원은 한산했다. 우리는 이른 오후 주치의와 면담 말고는 아무 일정이 없었다. 오전에 나는 필사를 했다. 지난밤 우연히 보게 된 글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젊은이들을 위한 글이었겠지만 충분했다. "실패에 우아할 것" 글 제목을 읽은 이상 내용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품위를 잃고 싶지 않았다. 인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건 내가 정신줄을 놓고 울고 떼쓰고 발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내 모습에 답답함이나 벽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괜찮은 척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글의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큰 후련함을 느꼈다. "당신이 품위를 잃을 필요가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 단어 한 단어 필사하며 나는 정말 이 글처럼 살고 싶어졌다. 어른이 되고 싶어 졌고, 그럼에도 순수하게 앞날을 기대하며 살고 싶어졌다. 어쩐지 내가 이 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속절없이 하게 되었다. 물론 마음 한편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여전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너는 네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는 거지? 지저분하고, 추한 면은 깔끔하게 도려내고 보기 좋은 모습만 남기려는 거잖아. 그렇게까지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거야? 나는 그 비난을 그냥 수용하기로 했다. 사실이었다. 나는 내 추한 모습을 진열하고 싶지 않았다. 근데 그게 나쁜가? 그렇지 않다. 나는 이런 상황에도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자리를 깔끔히 정리하고, 회복을 위해 자주 걷는 내가 좋았다. 우선은 그거면 충분했다.
오후가 되어 주치의와 만났다. 사실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었고, 원한다면 추가 검사를 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추가 검사를 하더라도 다음 임신에서 같은 일이 반복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으며, 실질적인 예방법 또한 없다는 실망스러운 사실도 함께였다. 다만 주치의는 내가 지난 세 번에 걸친 임신에서 건강히 자랄 아기를 낳지는 못했으나 각 임신은 독립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설득하려 했다. 맞는 말이었다. 다음 임신에서 같은 일이 생기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 말만 믿고 이번 임신에서 내가 너무 자신만만했던 사실도 떠올랐다. 기쁨이가 태어나기 2주 전 진료에서 나는 주치의에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이런 게 보통 임신인가 봐요. 너무 순조로워서 아무 걱정이 없어요." 바보. 보통 임신이란 건 없는데.
"아기는 다시 와요...." 다음 임신 시도는 언제부터 가능한지, 그전에 어떤 검사를 받아보면 좋을지 등을 이야기한 후 주치의는 우리를 바라보며 그렇게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엔 슬픔과 기대가 교차했고, 나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우리가 다시 부모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지만 결코 기쁨이가 돌아올 수는 없다는 절망. 그리고 그 사이 모든 감정들... 기쁨이를 다시 가질 수만 있다면, 심장이 뛰고,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이는 기쁨이를 다시 한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남편과 나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닌 것이다. 기쁨이는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수 없고, 우리는 기쁨이가 아닌 다른 아기를 가지기 위해 또 한 번 길을 올라야 한다. 참으로 다정하고, 잔인한 말이었다.
늦은 오후, 우리는 병실에서 내려와 텅 빈 진료 대기실에 앉았다. 언제나 아기를 품고 있던 여성들로 가득했던 대기실이 이토록 고요한 것은 처음이었다. 따뜻한 채광이 공간을 떠다니는 먼지 하나하나까지 비추고 있었다. 전세라도 낸 듯이 둘만 남은 공간에 앉아 나는 할 말을 고르고 있었다. 사실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꼭 지금 하지는 않아도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이 말을 내뱉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있잖아, 우리... 포기하지 말자." 그 말을 하는 순간 몸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내 손을 잡고 있던 남편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도 처음부터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를 기다렸다 했다. 우리는 서로 힘주어 끌어안았다.
4년 전 뱃속에서 아이를 잃었을 때와 우리는 이미 많이 달라져 있었다. 주저앉지 않으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38주간 우리는 정말 기뻤다. 다시 아기를 갖기로 결심하고, 임신하기를 잘했다고 서로 얼마나 자주 말했는지 모른다. 시간은 걸렸지만 그때 그냥 포기했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우리가 비로소 인생에서 무엇을 그토록 원했는지를 하나하나 알아 가는 여정이었다. 딱히 부족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 인생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기쁨이가 모두 가르쳐 주었다. 만약 처음으로 돌아가 똑같은 일을 겪어야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단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기쁨이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아기를 위해 거쳐야 하는 모든 과정을 다시 밟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올 둘째를 위해서도 우리는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그 기꺼운 각오가 바로 기쁨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