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쁨 나의 기록: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기록
오늘은 태어난 지 48시간도 안되어 세상을 떠난 내 첫아이, 기쁨이의 생일이다.
살아있었다면 두 돌을 맞이했을 기쁨이를 생각한다. 그 아이가 태어나서 어떻게 울었는지, 어떤 얼굴을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작별했는지를 생각한다. 뱃속에서 38주, 태어나서 약 48시간,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한다. 특별히 마지막 48시간 동안 아이가 나를, 내 인생을 어떻게 영구적으로 바꿨는지를 생각한다. 부모로서 자녀를 잃고 얻을 수 있는 게 있는가?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과 사무치는 그리움 말고 무엇을 얻는단 말인가. 하지만 돌아보니 내게는 대단히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사실 나는 부모의 사랑을 믿지 않았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의 불화, 별거, 이혼을 다 보고 자란 데다 엄마가 종종 내 앞에서 결혼을 후회하는 말을 할 때면 나 자신이 불행한 결혼의 부산물 같은 존재로 여겨지곤 했다. 그런 나를 부모가 사랑한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부모가 되어서 아이에 대한 사랑을 내비칠 때마다 나는 그들을 거짓말쟁이 보듯 냉소하곤 했다. 내게 있어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애정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책임감에 더 가까웠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되어본 경험은, 특히 나의 기쁨이의 부모가 된 경험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아무 문제 없이 순산하여 아이를 키워나가면서, 어쩌면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느꼈을 소중함과 애틋함, 그리고 사랑이 고도로 농축되어 한꺼번에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아이의 임종을 앞두고 비로소 볼 수 있었던 얼굴 앞에서 어째서 부모가 되면 모두가 그렇게 바보가 되는지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냥 알 수 있었다. 그 사랑은 속수무책이다. 마음은 무장 해제되고, 그 앞에 그저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랑이 있었다. 다른 어디에도 아닌 바로 내 안에. 나의 첫아이가 내게 이걸 알려주었다. 지금껏 그 누구도 내게 알려주지 못한 비밀을, 그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한 방법으로.
어쩌면 모두가 그런 사랑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되고부터, 나는 사람이 덜 싫어졌다. 예전처럼 쉽게 사람을 미워하기 어려워졌다. 오랫동안 나를 매우 힘들게 했던 지인도, 버스와 지하철에서 나를 밀고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고, 오해하는데 들어가던 에너지가 덜 쓰이자 매일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게 덜 힘들었다. 놀랍게도 아무런 노력 없이, 이런 변화가 마음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기쁨이와 같은, 귀한 존재니까. 사랑받아 마땅하니까.
아, 하지만 기쁨이는 왜 그렇게 일찍 떠나야만 했을까. 그토록 짧은 생에는 어떤 뜻이 담겨있을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을 때, 한 친구가 말해주었다. 기쁨이는 이미 네 주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고 간 거라고. '어떤 사람은 평생이 걸려도 너를 조금도 바꾸지 못할 텐데, 기쁨이는 단 이틀 만에 너를 완전하게 바꿔놓았다'며,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위대한 삶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도 기쁨이의 삶을 이렇게 잘 설명해 준 말은 없는 것 같다. 그 말을 해준 친구에게 정말 고맙다.
물론 여전히 왜,라는 질문은 존재한다. 왜 기쁨이가 그렇게 일찍 가야만 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옳다. 하지만 나는 가끔 상상하곤 한다. 기쁨이가 태어나기 전에 그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가정에 대해서. "너는 네 엄마를 완전히 바꾸고, 결국 더욱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단다. 하지만 네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뿐이야. 그래도 해보겠니." 다정히 묻는 절대자 앞에서 기꺼이 그 짧은 생을 택하는 나의 아이를 상상해 본다. 내가 사랑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사랑한 나의 아이를.
2024년 9월 21일 작성한 글을 끝으로 '나의 기쁨 나의 기록' 연재를 마칩니다.
조만간 짧은 후기도 남기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 읽어 주시고, 함께 슬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