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길게 달리고 싶습니다.
마치 날아오는 총알을 방패없이 맞아내는 기분이랄까
지난달, 들어오는 일정을 무리하게 소화시키느라 안 그래도 없던 체력이 더 없어졌다.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있으니 건강 어플의 총 걸음수는 16걸음이 나왔다.
이정도면 우리집 고양이 보다 적게 걷는 거 같다.
걷는 법을 잊어버린채 책상에 앉아있다가 온몸의 근육이 모두 빠지면
가느다란 팔, 다리와 두둑한 뱃살만이 나를 지탱해주겠지하는
아찔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프리랜서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에 병원생활이 시작될 거 같아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매일 조금씩 움직이기로 다짐하며 강제성을 주기 위해
함께 거주하는 이모씨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근처 공원을 돌기로 했다.
천을 따라난 길을 30-40분정도 평균 페이스 11-13에 맞춰 걸으면 3km가 된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 러닝을 해볼까 했지만 갑자기 움직이니 몸이 놀라 무릎이 아팠다.
하나씩, 천천히 시작하자 다짐하며
도서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빌려 읽었다.
책을 읽으며 운동에 대한 흥미를 키우고자 했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프리랜서라는 직업과 운동, 집에서 오래 일하기의 비법이었다.
그로 말하자면 오랜기간 끝없이 작업물을 낸 거장아닌가.
그런 그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러닝을 하고 마라톤을 나가는데
우주의 작은 먼지같은 프리랜서인 내가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싶어졌다.
그동안 막연히 매일을 달려내기 바빴지만
이제는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를 달릴 몸을 만들어야된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건강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 코스트코에 가서 닭가슴살 캔과 샐러드를 구매했다.
아직은 배가 차지 않아 샐러드를 먹고 구운계란 두개와 컵누들 큰컵을 먹어야하지만
점점 괜찮아지겠지라는 희망이 있다.
오래 지속되는 삶을 위해 재정도 정비하려 지난달의 수익과 지출에 대한 가계부를 구글시트로 작성했다.
생각보다 식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어디서 사나봤더니 편의점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던 사장님의 따스한 얼굴이 떠올랐다.
사장님, 당분간 못 가요.
이제껏 해왔던 개인 작업들도 다시 돌아보았다.
혼자 집에서 그리기만해서 무엇이, 어디가 부족한 지 몰랐는데 수업도 가보고
숙제도 하고 여러 작가님들의 작업물도 보면서 나의 그림에 비어있던 구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그동안 마음이 답답했구나.
어쩐지 앞으로 좀 더 잘 달릴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