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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스키 Mar 22. 2022

행복은 뭘까?

무엇을 할 때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흠…’ 하고 골똘히 생각한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다. 엽기 떡볶이를 좋아하기는 하나, 엽기 떡볶이를 먹을 때 행복하다고 하기에는 내 행복이 너무 단순한 것으로 치부되는 기분이 든다. 과연 행복은 뭘까?


“Happiness is only real, when shared (행복은 나눌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 영화 <인 투 더 와일드> 중에서


나눔이라는 행위는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단, 마음에서 우러나서 한다면 말이다. 삼대가 모여 사는 북적거리는 대가족 사이에서 자란 나는 유년기부터 나눔을 강요받았다. 누가 나에게 과자를 주면 입에 넣기 전에 반드시 어른들께 먼저 권유해야 했고, 장난감이나 옷은 위의 형제에게 물려받았다. 동생과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성별도 달랐는데, 그런 연유로 불공평하게도 동생은 나눔의 지옥에서 쉽게 빠져나갔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서는 경험조차 모두가 함께하는 것을 추구했다. 예컨대 외식 한 번 할라치면, 많은 어른 가족들의 일정을 맞춰야 했다. 아이들이야 학원 한 번 빠지면 그만이지만 어른들의 일정을 조율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당연히 외식은 육 개월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였고, 여행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자기주장을 펼칠 나이가 되고부터는 집에서 툴툴대기도 했지만, 세뇌 교육을 잘 받은 탓에(?) 밖에서는 나눔과 공유를 제법 모범적으로 실천했다. ‘이것 좀 드실래요?’, ‘같이 쓰실래요?’, ‘한번 해 보실래요?’ 등등. 어색한 상황에서도 같이 하자는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도 자동으로 나오니까 사회생활에서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뭐랄까, 전화를 받을 때 반사적으로 “여보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을 것이다.


<인 투 더 와일드>에서 주인공 맥캔들리스는 미국 곳곳을 여행하고 마지막 목적지인 완전한 야생의 세계, 알래스카로 향한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다른 삶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내 인생에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 이곳저곳을 누비는 자유로운 맥캔들리스는 내가 언제나 꿈꿔 오던 행복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를 통해 왠지 모를 상쾌한 해방감을 느꼈고, 이는 훗날 내가 장기 배낭여행을 떠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슬프게도, 영화에서 주인공은 알래스카에서 혼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후세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남긴다. 어릴 적에는 맥캔들리스의 행복에 관한 깨달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결말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나도 나이가 든 걸까? 혼자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누리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요즘은 좋아하는 것을 할 때도 가슴 깊은 곳에서 ‘누구누구도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 하는 마음이 들며, 아쉬움을 느낀다. 몇 해 전에 러시아를 경유할 일이 있었다. 다음 비행까지 시간이 남아 공항 안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식사 겸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보르시라는 러시아 수프를 주문했는데 비주얼은 낯설었지만, 맛은 한국 소고기뭇국과 비슷한 게 입맛에 딱 맞았다. 식사를 맛있게 하면서도 ‘가족들은 이런 음식 못 먹어봤을 텐데…’ 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쉬움이 컸는지 한국에 돌아와서 러시아 수프는 아니지만 곁들여 먹었던 (비교적 쉬워 보이는) 러시아 반찬(?)을 만들어서 식구들과 함께 먹었다. 러시아식 당근 김치인데 맛만 평가하자면 대실패였다. 하지만 이 반찬을 먹으며 대화로 가족들과 공항에서 있었던 일을 공유했다. 당근 김치 맛과 상관없이 식구들은 나의 경험을 즐겁게 들어주었고, 비로소 나는 아쉬움 없는 흐뭇함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글을 마치는 지금도 여전히 행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누군가와(특히 가족과) 무언가를 공유하고 나눌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차분해진다. 이런 감정을 행복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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