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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스키 Feb 05. 2022

온 앤 오프

내 삶에서 책상은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방 한가운데에 책상을 배치했다. 구매한 지 한 이십 년쯤 되었는데 앞으로도 십 년은 거뜬할 만한 비주얼을 가졌다. 일뿐만 아니라 취미생활을 즐기는 장소이기도 하여, 때에 따라서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여기에서 머문다. 무식하리만치 튼튼하고 대단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나의 책상. 그 책상이 놓인 이 방. 여기는 나의 오피스이자 안식처다. 책상 중앙에 컴퓨터가 있고 그 앞에는 드로잉 패드가 있는데 컴퓨터에 손글씨를 쓸 일이 종종 있어서 애용한다. 왼쪽으로 손을 뻗으면 업무에 필요한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매일 다른 책을 사용하므로 전날 저녁에 미리 필요한 책들을 골라 놓는다. 마치 다음 날 입고 갈 옷을 준비해 놓듯이 말이다.

 

온(On)

출근 알람이 울리면 컴퓨터 전원을 꾸-욱 누른다. 윈도 부팅음이 울리는 순간 출근 모드 온. 근무 방식이 백 퍼센트 재택으로 바뀌면서 내 방은 잠자는 공간이자 일하는 사무실이 되었다. 때때로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회사에 침범당한 기분이 들어 우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장점이 훨씬 더 많은 법! 재택근무에서 가장 좋은 점은 필요한 모든 것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다. 무겁게 들고 다닐 일도 없고 화장실을 참을 일도 없다.

그리고 하나 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인데, 감각에 민감한 편이라 발을 감싸는 양말과 신발을 몹시 싫어한다. 심할 때는 감싸는 강도가 강하게 느껴져서 발이 구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어엿한 사회인이 맨발로 다닐 수는 없으니 밖에서는 마냥 참기만 했다. 그런 점에서 나 같은 사람에게 재택은 최고의 근무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책상 아래에는 자유로워진 발을 위한 발 마사지 건식 사우나기(?)가 있다. 발걸이로 사용하긴 하지만, 일할 때도 수시로 원하면 언제든지 뜨뜻한 발 사우나를 즐길 수 있다.

책상 오른쪽 끝에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놓여 있다. 작업할 때 들릴 듯 말 듯 한 볼륨으로 음악을 들으면 스트레스도 덜 쌓이고(안 쌓인다고는 못하겠다) 집중도 잘 된다. 일할 때 듣는 음악은 가사가 없는 것이 포인트인데, 가사가 들리면 따라 부르느라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그래서 근무 시간에는 몰입에 도움 된다는 하이든의 교향곡이나, 모차르트 사계 같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 편이다.

 

오프(Off)

방 밖은 거실인데, 일하다가 쉴 때는 반드시 거실에 나간다. 방에 있으면 일하는 기분이 들어서 쉬는 것 같지 않아서다. 거실은 휴게실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까? 다시 방, 아니 사무실로 돌아가자. 퇴근 시간이다. 퇴근 알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로그아웃을 한 후, 컴퓨터 전원을 끈다. 이것으로 퇴근 완료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아무리 일에서 퇴근했어도 같은 장소, 같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퇴근한 것 같지 않은 기분이다. 쉽사리 오프 모드로 전환되지 않는 이유다.

오랜 기간 재택근무를 하면서 심신 안정을 위해 터득한 몇 가지 요령이 있다. 먼저, 일할 때 사용하던 중앙 형광등을 끄고 방 뒤쪽 창문 근처에 있는 조명으로 바꿔 켠다. 사무실이 아니라 집이라는 것을 나 자신에게 인지시키기 위해서다. 일할 때 쓰는 조명보다는 어둡지만 나름대로 분위기가 그윽하니 나쁘지 않다. 다음으로는 음악. 들릴까 말까 하던 볼륨을 크게 높이고 흥얼거릴 수 있는 곡으로 바꿔 튼다. 요즘은 림킴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즐겨 듣는데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매력이 있다. 이렇게 살짝 침침한 조명 아래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퇴근의 기쁨을 만끽한다.

 

재택근무의 핵심은 모드 전환이다. 로봇은 아니어도 그만큼 빠르게 ‘온’에서 ‘오프’로, ‘오프’에서 ‘온’으로 모드를 바꾸어야 매일의 생활에서 일과 휴식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경험상 약간의 노력으로 주변 환경을 살짝만 바꾸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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