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력과 시야

지금 안경이 필요한 곳은

by 우인

나는 심한 부동시를 가지고 있다. 왼쪽 눈에 비해 오른쪽 눈의 시력이 현저히 낮다. 바로 앞에 있는 사물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의 오른쪽 눈은 매우 망가져 있는 상태이다. 그래도 왼쪽 눈의 시력은 아직 멀쩡한 편이어서 지금껏 왼쪽 눈의 힘으로 버텨왔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힘이 약해지는 느낌이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의 뚜렷함이 점점 옅어지는 것 같다.


이렇게 시력이 낮은 탓인지,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역시 많이 좁은 편이다. 이는 단순히 나의 생활에서도 자주 드러났다. 어릴 적부터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가져오라 지시하면 나는 그것을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해 허둥지둥 대었던 적이 매우 많았다. 등잔 밑이 어두워도 너무 어두웠었다. 조금만 시야를 돌려도 금방 보이는 것을 나는 끝까지 헤맸었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은 오죽 답답했을까. 나는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든 이로 인해 항상 혼이 났었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무엇을 가져오라 시키는 것은 거의 공포증이 되었다. 그리고 아마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을지,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의 선택과 행동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딴에는 어떻게든 한다는 것마저도 다른 사람이 보기엔 답답하거나 탁월하지 못하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쉬운 일에서도 자기 확신을 스스로에게 가져다주지 못했다. 결정을 타인에게 미루는 버릇이 생겼고, 그것에 따라 나의 운명을 맡기는 일도 종종 있었다. 돌이켜보면 전혀 최선의 결정이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판단할 만큼의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는 나이를 먹으며 점점 나의 발목을 세게 붙잡았다. 개개인의 주장과 확신을 필요로 하는 일에 잘 따라가지 못하였다. 대학교에서 조별과제를 할 때에도 나는 사소한 의견 하나 내는 것조차 매우 두려워했다. 나의 의견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는 애초에 고려도 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의견이 얼마나 가소로워 보일 것인지가 두려웠다. 처음부터 나의 의견을 스스로 가소로움의 범위 안에 집어넣고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자신감이 뒷받침되지 못했던 나의 의견과 일은 그 통찰력과 질적 차원에서도 다른 조원들의 것에 비해 빈약함이 드러나곤 했다. 조별과제가 끝날 때마다 한숨 속에 잠을 청하던 밤이 많았었다.


closeup-view-beach-viewed-from-lenses-black-glasses.jpg


많은 넘어짐과 뒤쳐짐과 그로 인한 내적 실패를 겪을 때마다 점점 시야가 넓어지는 것은 있다. 딱지가 굳어지고 겹겹이 쌓여감에 따라 나 역시 점점 단단해지며 커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무수히 겪었던 내적 실패로부터 나는 경험을 얻고 방법을 얻었으며, 그로부터 나의 시야는 사람과 사물과 사회의 원리를 보는 넓이와 힘을 얻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다. 20대 중반에 이른 지금도 나는 물건을 앞에 두고 덤벙대며, 일을 하면 도움이 되지 못할까 지레 겁부터 배불리 먹고 시작한다. 나는 나의 시력과 시야를 다른 사람들만큼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한다. 어쩌면 지금 안경이 필요한 곳은 나의 얼굴에 달린 두 눈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것임을 생각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못생긴 나는 옷을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