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은신처 진정한 쉼을 찾아서
"좁은 공간에서 찾은 고요는 단순한 쉼이 아니라 세상과 마주할 힘을 길러주는 내면의 동굴이다."
아침에 아내가 물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왜 그렇게 오래 있었어?”
난 대답했다. “쉬었어.”
아내는 어리둥절해하며 다시 물었다. “화장실에서?”
나는 웃으며 답했다. “응.”
그 순간 화장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이 있다. 바깥에서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요구하지 않는 그 짧은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이었다. 아내에게는 그저 이상하게 들렸을 그 말 속엔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요가 숨어 있었다.
구석기 시대에 남자들은 주로 먹을 것을 구해왔다. 긴장과 위협을 무릅쓰고 사냥을 하고 돌아오면 휴식이 필요했다. 잡아온 고기를 구워 먹고 배가 부르면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며 외부의 위험에서 안전하다는 느낌을 좁은 공간 속에서 얻었다.
그 좁은 동굴에서 불빛은 아늑하고 고된 하루를 잊게 해주는 유일한 위안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런 공간을 찾는다.
과거처럼 사냥을 하진 않지만 일상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경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터에서의 책임과 사회적 역할은 현대판 사냥과 다름없다. 그래서 하루를 마치고 좁고 아늑한 공간에 들어가면 그곳은 나의 동굴이 된다. 게임방, 서재, 혹은 자동차 같은 공간들이 나에게 안전지대를 제공하는 이유다. 그곳에서만큼은 내 감정과 책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아무에게도 설명할 필요 없고 강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그저 나 자신만이 존재하는 순간이다.
TV나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은 구석기 시절 사냥 후 모닥불을 바라보며 긴장을 푸는 것과 같다. 계속 변하는 화면의 빛과 소리 속에서 나는 잠시나마 현실의 복잡함을 잊는다. 마치 불꽃이 일렁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모든 생각을 비우는 것과 같다.
집이 넓어 서재가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자주 쉬는 곳은 차 안과 화장실이다. 차 안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세상을 잠시 멀리 두고, 화장실에서는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고립 속에서 진정한 안식을 찾는다. 스트레스가 쌓여 집에 있는 것조차 힘들 때 좁은 차 안에 앉아 눈을 감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거실의 캠핑 의자에 앉아 창밖 먼 곳을 바라보는 것도 멋진 풍경이지만 나는 결국 화장실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공간이겠지만 나에게는 그 짧은 시간만큼은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은신처다. 변기에 앉아 눈을 감고 있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그 순간 외부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나만의 고요함이 찾아온다.
왜 이렇게 나만의 동굴이 필요할까? 요즘 시대에는 아내와 협의하며 가정을 꾸려가고 모든 책임을 혼자 떠맡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공동의 책임을 지고 서로의 역할을 나눠 갖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나도 모르게 ‘강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느낀다. 가정을 책임지고 감정적으로 취약함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무언의 기대가 나를 짓누른다. 이것은 단순히 나만의 고민이 아니다. 많은 남성들이 이런 보이지 않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강함을 요구받는 시대적 기대와 실제로는 지치고 연약해진 마음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만의 공간에서 그 기대와 부담에서 잠시라도 도망치고 싶어진다.
이런 공간들은 나에게 감정적 탈출구가 된다. 타인의 기대와 외부의 압박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비로소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이 된다. 외부의 시선도 기대도 없는 그 공간에서 나는 다시 힘을 얻는다. 그곳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내 내면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심리적 안식처다. 결국, 이런 개인적인 동굴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내면과 대화하며 심리적 쉼터가 되는 곳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아빠, 빨리 나와! 보드게임 하자!” 하고 재촉한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기에 “응, 그래!” 하고 바로 문을 열고 나간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야말로 또 다른 행복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첫째가 물을 뿌리듯 말한다.
“아빠, 손 씻었어? 물소리가 안 나던데?”
결국, 나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나의 동굴로 잠시 돌아가 그 고요를 느낀다. 고독 속에서 짧지만 값진 시간을 보내며 나는 다시금 세상과 마주할 준비를 한다.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자신만의 작은 동굴을 찾아 잠시 머물러보세요. 그곳에서의 고요한 시간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 마음의 짐을 덜고 다시 세상과 맞설 힘을 키워주는 소중한 공간이 될 것입니다. 혼자가 되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안에서 자신을 재정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