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맨데이 Aug 07. 2024

낭만은 소란스럽다

낭만과 현실 사이

하고 싶은걸 다 해보자 라는 결심으로 여행에 착수(?)했다. 그러나 내가 망각하고 있었던 한 가지가 있었으니 나는 뼛속까지 도시사람이며 그 흔한 시골에 사는 친척 또한 없는 서울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즉슨! 자연은 나에게 멀리서 바라만 봤던 정제된 설탕과 같은 낭만이었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발리'라는 미지의 여행지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행 전 걱정이 있었으니 바로! 발리는 자연이 생활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여행지라는 것이다. 평소에는 여행을 해도 사람의 손이 닿아있는 도시로 떠났었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지는 '힐링'이 콘셉트임으로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바다와 나무가 함께 닿아있는 곳으로 선정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무한한 상상력으로 나는 이미 프리다이빙을 하며 물고기, 거북이와 함께 우아하게 수영을 하고 있었고(유튜브에서 발리를 치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바닷가에서는 천을 깔아놓은 채 누워서 책을 읽고 있었다.


거북이랑 수영하기

해변에서 요가하기

우붓 요가원 가기

서핑하기 등등


이런저런 버킷리스트를 세우며 약 20일간 여행을 하면서 도장 깨기를 하듯 하나하나씩 지워갔다. 해변 요가는 sns에서 찾아 무료로 진행되었다. 바닥에 그저 천 하나만 깔고 선생님의 목소리에 의지하며 동작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해변가의 강아지들이다. 개인적으로 강아지들은 멀리서 바라보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귀엽지만 다가오면 조금 무섭다.) 하필이면 요가하는 자리 바로 앞에서 거친 숨을 쉬고 가끔 맹렬하게 짖으며 자리를 뜨지 않고 요가하는 내내 앉아있었다. 그 밖에도 생각보다 큰 파도소리, 부슬비, 손 발에 묻는 축축한 모래까지 나의 신경들이 이리저리 분산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평생을 도시에서 살면서 자연을 이렇게 오랫동안 가깝게 접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종종 접했지만 크면서 국내 여행을 가도 주변 환경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숙소에서 자고 다시 나와서 다시 놀고, 물놀이를 가도 인공물인 수영장이나 워터파크에 가고 계곡이나 바다는 보통 바라보는 영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상상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나의 낭만은 나의 입맛대로 이쁘게 포장된 것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낭만이라는 포장을 벗기고 그 속 안에 진짜의 모습을 봤을 때 모든 낭만이 나의 상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짜고, 시끄럽고, 거칠고, 뜨겁고, 불편하고, 간지럽고, 힘들고, 찝찝했다. 그러나 이런 예측하지 못했던 자극들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았고, 익숙해졌으며 그 속에서 여유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연과 나는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나의 상상과는 조금 다른 여행이었지만 이런 예상치 못한 요소들까지 즐겁게 느껴지는 건 여행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그런데 이상하게 일상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어쩌면 발리여행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편안한 네모 상자와 맞바꾼 여유로움일지도 모른다. 


모두들 오늘도 여행과 같은 하루를 살기를 바라며(나포함)... 끝

이전 23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