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대신 사람으로

일상의 혐오에 무력하지 않기를

by 블루맨데이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 과정에서 심리적, 정신적 에너지를 소비한다. 맞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감정을 소비하는 일종의 노동이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면서 ‘소비’가 아닌 ‘채움‘을 경험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렇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날까? 그리고 그중에 긍정의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유튜브에 들어가 영상을 보면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했던 콘텐츠에 악플이 달린 경우를 많이 본다. 악플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댓글은 익명성이라는 온라인 체제하에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응원처럼 좋은 댓글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긍정적인 메시지보다는 부정의 메시지가 더욱 기억에 남기 마련이라 당사자의 경우 따뜻함 보다는 차가운 상처를 경험한다.


최근 알고리즘의 해류 속에서 간택을 받아 아이유의 ‘love wins all’의 소개글을 봤다.

아이유의 love wins all 소개글


사랑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위의 소개글처럼 정치, 경제, 젠더 등 다양한 사회적 쟁점에서 비롯된 혐오가 사회에 만연하다. 뉴스에서는 항상 그랬지만, 부정적인 내용들이 나오며 그저 일상을 지키는데 급급한 사람으로서 그런 내용들은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인류애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이 물든다.


“도대체 왜? 왜 저런 선택을 할까?”


사람은 오래 보아야 이쁘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람을 오래 볼 여유도, 받아들일 공간도 없어 보인다.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생각이 점점 점령할 때마다 한 가지 희망인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혐오 속에서 피어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나 자신, 가족, 친구, 사회, 국가 등 혐오의 원인이 되는 요소들이 다시금 사랑을 만들어간다. 세상을 바라보면 어렵고 힘들어 보이며, 미래가 갑갑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어둠에 가려 그 속에 빛나고 있는 사랑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역사는 오랜 시간부터 둘이 공존해 왔으며 그런 혼란 속에서 존재해 왔다. 당장 보이는 혼란과 혐오와 같은 어둠은 강해보일 지라도 항상 작지만 강한 사랑으로 견뎌왔다. 우리는 스스로가 그 사랑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항상 그 어둠 속에서 빛나며 극복했던 그 주체가 스스로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일상의 혐오에 지쳐가는 개복치들이 사랑의 순간을 경험하는 오늘이 되길 바라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