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
시간은 매일 하루치 맥박을 빌려 갔다
시간의 심장이 고동칠 적에
말과 여백 사이로 자맥질하는 시간의 호흡이
봉인되기 위하여,
생(生)은 플라스틱 블록 조각들이 아니어서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라 할 수 없었기에
부를 수 없는 생의 마디에서 흩어진 시간을 부르려
시가 왔다
시간의 몸이 타오르고 남은 재
쓸모없는 찌꺼기만은 아닌 재를 남겨
두고두고 맛보는 혀의 감각이
시를 낳았다
시간이 남겨준 이자를 가지고, 시가 왔다.
2년 전. 3년 넘게 딱딱한 보고서를 쓰고, 딱딱한 내용의 책을 주로 읽다가 문득 윤동주의 시집을 전자도서관에서 빌려 허겁지겁 읽었다. 내 맥박을 빌려간 시간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에 만족하고, 무엇을 욕망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느끼고, 만족하고, 욕망하는 시간을 재창조하기 위해 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시가 어느 날부터 써지기 시작했고, 계속 써질지 확신하지 못한 채로 연재를 시작했다. 이제 연재 시작 전에 발행했던 두 편의 시와 함께 하나의 브런치북으로 묶으려 한다.
다음 연재는 글을 쓰는 새 루틴을 만드는 방식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밥, 국, 반찬 하나하나 다 만들 시간이 없어서 비빔밥을 먹는 사람처럼, 감정도 자유로이 풀어내고 거리 두기도 하며 이성적 언어로 바꾸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루틴을 만드는 계획이다. 아이와 정서적 교감도 나누고 브런치를 통해 나누는 단계까지 잘 짜인 루틴 하나로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그 결과물이 시가 될 수도, 산문이나 중간 어디쯤의 것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직도 시는 어렵다. 느껴주고, 각자의 방식대로 시를 완성해 준 브런치 독자들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너무 무덥지만은 않은 여름을 보내길 기원하며.
(커버 이미지는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에 나오는 시계와 샤갈의 '연인들' 그림을 섞어서 새로운 그림을 완성해 볼래?"라는 주문에 따라 챗 지피티가 그려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