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수 May 12. 2024

그들은 왜 불사(不死)의 강을 건넜을까?

(1)프롤로그: 한국과 일본의 신주(心中) 문화를 돌아보며

너와 함께라면 마지막은
가볍게 실례로 끝났다
함께 어른이 되었으니까 네가 운다
혼자서 먼저 가서는 안 된다고
좋아요 약속할게요
(생략)
너에게 안겨서 잠이 든다
新宿心中(신주쿠 정사) -原田芳雄(하라다 요시오)




에도 시대, 일본 청춘들 사이에서 이상한 문화가 유행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하고자 하는 문화였죠.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볼 때는 당연한 문화였지만, 17세기 에도 사람들에게는 생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정략, 중매 결혼이 일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일탈'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나 봅니다. 그들은 가족들, 친지들 몰래 연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주다테(心中立て)라는 사랑의 정표를 주고받기도 했죠('신주(心中)'라는 단어의 유래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미 조혼을 하거나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해야 할 사람들이 연애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들의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냉혹한 현실 앞에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과격해졌습니다. 처음의 신주다테(心中立て)는 각서나 머리카락 등 신체를 해하지 않는 것이었으나, 점차 서로의 팔뚝에 문신을 하거나 허벅지에 칼이나 송곳을 꽂거나 손가락을 자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불타오른 나머지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저질렀습니다. 연인과 함께 동반자살을 하거나(心中), 한 쪽이 연인을 살해하고 자신도 뒤따라 죽는 무리신주(無理心中)까지 이어졌죠. 불사의 강(死川)을 앞에 둔 채로 말입니다.


이들을 소재로 한 소네자키 신주(曾根崎心中), 시나가와 신주(品川心中) 등의 설화가 만들어지고, 이 설화를 가지고 각지에서 인형극(분라쿠, 文樂)가 만들어지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신주(心中)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자, 나라에서는 이를 금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무사(사무라이)가 신주를 시도했을 경우, 집안 전체가 초닌(町人) 즉, 상인으로 강등되어야 했죠.


하라다 요시오(原田芳雄)는 1991년에 신주 문화를 소재로 한 신주쿠 정사(新宿心中)를 노래했다.



이러한 금단의 사랑은 에도 막부가 막을 내리고, 신문물이 유입되면서 계속되었습니다. 메이지 시대, 다이쇼 시대, 쇼와 시대로 이어졌죠. 특히, 신주 문화는 다이쇼 시대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쇼와 시대 다자이 오사무의 손에서 꽃피었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이어지지 못한 연인을 그리워하며 에세이를 집필했고, 다자이 오사무는 연인과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혼자 살아 남은 뒤 문학을 집필하니, 이들이 바로 <어느 바보의 일생><인간실격>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일생은 생애(生愛) 그 자체였고, 그의 생애(生愛)는 <인간실격>으로 형상화된다.



근대 문물이 유입된 후, 일본의 신주 문화는 다른 나라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중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나라는 일제 치하에 있던 조선이었습니다. 조선인들 역시 정략 결혼과 연애 결혼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동반자살을 하기에 이르렀죠. 일본의 신주(心中) 문화는 조선의 정사(情死) 문화로 이어졌습니다. 강명화와 장병천에서 시작정사(情死) 문화는 윤심덕과 김우진, 김봉자와 노병운으로 이어졌습니다. 홍옥임과 김용주같은 일제 강점기 최초의 동성애 커플이 탄생하기도 했죠. 특히 김유정과 이상은 관계가 좀 특이한데, 이들은 동반자살을 하지 못했습니다. 김유정은 절친이었던 이상에게 동반자살을 권유했지만, 이상은 이를 거부했죠.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었고, 각각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으나 이어지지 못한 점은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죽은 뒤 합동 영결식을 치르면서, 죽은 후에야 해후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


그러면 무엇이, 어떤 계기가 이들을 불사(不死)의 강으로 이끌었을까요? 생애(生愛)를 위해 생애(生涯)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과 일본 청춘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봅시다.




아래는 목차이고,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마다 주1회 연재할 계획입니다(목차는 연재하면서 일부 수정될 수 있습니다).


 프롤로그(오늘 쓴 글)          

 에도 시대: 시나가와 신주(品川心中) 설화          

 메이지 시대: 모리 오가이, <기러기>, <아씨의 편지>          

 다이쇼 시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바보의 일생>          

 쇼와 시대: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강명화와 장병천          

 윤심덕과 김우진, <사의 찬미>          

  김봉자와 노병운          

  이상과 김유정, <실화>, <단발>          

  홍옥임과 김용주          

  실락원과 전혜린: 끝나지 않은 신주 문화          

   에필로그          


그러면, 1년 만에 돌아온 제 새로운 연재글을 잘 부탁드립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