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제일 먼저 방향을 잃는다‘
어렵고
힘들기만 했던 내 삶엔
늘 도피처가 하나 있었다.
하루 종일 짐을 지고 다니는 사람처럼
내 날들은 버겁게만 무거웠지만,
나는 그 짐을 진 채로
묵묵히 걸어 다니곤 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매료시키던 것들 앞에서
어깨를 짓누르던 고통이
문득 사라지는 순간들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어김없이 걷는 사람이 되었다.
보통은 한두 시간쯤,
그날따라 마음이 더 무겁다면
대여섯 시간도 모자라서
계속, 계속 걷고 싶었다.
하지만
늘 시간이 없었다.
몸이 먼저 지쳐 멈출 때도 많았다.
그래도 나는
걷는 길 위에서만큼은
어쩐지 가벼운 사람이 되곤 했다.
어디에도 닿지 못한 마음들이
발끝에서 흘러나와
아무 말 없이 풀려버리는 것 같아서.
그런데 어느 순간,
삶이 조금 나아졌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챈 날,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괴롭지 않은데도 괴로운 듯,
설레어할 순간에서도 설렘이 일지 않고,
마치 늘 쥐고 있던 짐을
문득 내려놓아버린 사람처럼
손끝이 허전해져
갈 곳을 잃은 기분이었다.
길은 여전히 내 앞에 있었지만
예전처럼 나를 구해주는 힘은
조금씩 옅어져 갔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걷지 못해 안달하던 예전과는 달리
걸어도, 걸음을 멈춰도
그저 어딘가에 떠 있는 사람처럼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