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된다는 것, 거리와 문화를 넘어선 온기‘
여행자로서 마주하는 태국인들도 친절하지만, 그들의 진짜 성품을 알게 된 것은 태국에서 살기로 마음먹고 나서였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인으로, 수많은 여행객을 상대하며 태생적 친절 너머 이해타산을 따르게 마련이다. 조금만 벗어나면 그들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다.
태국인들은 늘 ‘싸바이’와 ‘짜이디’를 외친다. 자신들의 문화와 성품을 이야기할 때도 ‘짜이디(친절하다, 선하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싸바이싸바이’라는 표현은 무엇이든 흘러가는 대로 편안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그들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길을 가다 눈이 마주치면 웃음으로 답하고, 길이나 교통편을 물으면 금세 자신의 직장, 고향, 가족 이야기까지 덧붙인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도 이랬던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서로를 의심하고 개인주의화 되었는지 가끔 그리움과 의문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 씁쓸함이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은 올해 초 비자 때문에 잠시 한국에 갔을 때였다. 겨울이면 매일 딸기를 먹는 딸을 위해 부모님은 근처 농수산물 시장에 데려가셨다. 싱싱한 딸기가 점포마다 가득했기에 몇 집을 지나며 가격과 품질을 고르던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한 가게에서는 20대 젊은 총각이 과일을 팔고 있었는데, 잠시 머뭇거리는 우리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 말은 자기 가게의 물건은 다른 가게들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는데, 어떤 내용을 담았든 자신의 부모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손님에게 반말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순간 두려움과 사나움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반면, 한국에 나가기 전 동네 작은 시장에서는 부모님께 드릴 말린 과일을 사기 위해 어슬렁거릴 때, 주인은 선뜻 손바닥 위에 맛보기 과일을 올려주었다. 내가 청하기도 전부터였다. 내가 살지 안 살지 모른다고 말하자, 미안해하지 말라며 다양한 건과일을 후하게 맛보게 해 주었다. 결국 맛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리를 뜨려 할 때도 환하게 웃으며 “괜찮다, 미안해하지 마라”라고 했다. 하루 이틀 사이에 마주한 두 경험이 대비되어 내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태국에서 경험한 친절은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방콕 교통국과 치앙마이에서의 경험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운전면허 발급을 위해 새벽 일찍 교통국에 도착했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던 내게 한 남자가 길을 안내해 주었다. 그는 출근길이었음에도 끝까지 곁에 머물며 대기표를 뽑고 서류를 준비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밥은 먹었는지, 커피를 마실지 챙겨주면서, 발급이 늦어 다시 와야 할 날짜까지 직원과 조율해 주었다. 약속된 날 다시 교통국을 찾았을 때, 그는 근무하다 말고 점심을 사주며 “우리는 친구니까 괜찮아”라고 말했다.
친구 사이가 된다는 것은 때로 한계 없는 친절을 받을 권리를 얻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친구는 무더운 날 내가 마사지를 받고 싶다니 잘 하는 가게에 데려가 자기는 그 동안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지난주에 만난 치앙마이의 오토바이 렌털샵 사장은 여행 내내 길에서 마주치면 내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었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하면 근처 예쁜 카페까지 데려가주었고, 비행기 시간까지 고민하자 가게의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쐬라며 함께 나서기도 했다. 매번 가게를 비워두고 나와 함께해 준 그에게 미안함을 표현하자 그는 “우리는 친구니까 괜찮아”라고 반복했다. 만난 지 하루 이틀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그는 자신의 이익보다 관계에 더 신경 쓰는 듯 보였다.
내가 소개한 경험은 태국에서 1년 동안 겪은 일의 일부에 불과하다. 물론 도시 안에서 삭막함이나 차가움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실망보다 감사와 감동이 더 크게 남는 이유는, 대부분의 태국인들이 지닌 따뜻하고 관대한 성품 덕분일 것이다. 사람을 믿고 서로를 의심하지 않는 태국인들과의 경험 덕분에, 나는 이 나라를 떠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여행자이자 이방인으로서 그들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결국 셈하지 않고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관계가 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나이나 문화, 환경이 달라도 서로를 싸바이하게 만드는 그런 관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태국인과 친구가 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