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네? 전 호구가 아니라고요》

사랑하지만 여전히 불편한 진실 하나.

by 사막의 소금



태국 사람들의 온순함과 친절에 말랑해진 마음이 갑자기 얼어붙을 때가 있다. 바로 택시나 툭툭을 탈 때다. 외국인을 만나면 무조건 흥정부터 시작하는 기사들. 택시는 미터기가 있어도 ‘고장 났다’, ‘거리가 멀다’, ‘교통체증이 있다’는 핑계를 댄다. 그러곤 서너 배의 가격을 부르는 게 일상이다. 심지어 잔돈조차 돌려주지 않는다. 어깨만 으쓱하며 어쩔 수 없다는 뻔뻔함을 보이는 기사들을, 나는 안타깝게도 10년 넘게 만나곤 했다. 이미 마음을 빼앗긴 나라인데도, 그럴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짜증이 올라온다.


이런 상황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행자들이 기분 좋은 여행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여행을 나쁜 기억으로 남기는지 모른다고 대놓고 말해주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개인적인 대화를 해보면, 대부분은 악의로 가득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화를 내기보다, 괜히 깊은 한숨으로 대신하곤 한다.


특히 여행자들이 이 횡포를 가장 먼저 겪는 곳은 공항이다. 수완나품에 도착해 짐을 찾고, 두근대며 첫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 가장 긴장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공항에서 택시를 타는 일일지도 모른다. 괜한 과장이 아니다.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택시는 어떻게 타야 하냐, 얼마까지 감안해야 하냐”를 묻고 또 묻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태국 여행 10년 차에 태국살이 2년 차인 나조차 여전히 기사와 입씨름을 하고 마음이 상하곤 한다. 그러니 여행자들은 오죽할까. 그것도 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매번 이런 경험을 해야 한다니, 정말 애석할 뿐이다.


얼마 전 친구 가족이 태국에 놀러 왔다. 모두 6명이라 공항에서 대형 벤 택시를 잡아 보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바가지를 쓰기 쉬운 상황이었기에 내가 나서서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감감무소식. 결국 택시 두 대를 나눠 타라는 답을 들었다. 어른들을 먼저 태워 보내고, 두 번째 택시에 친구를 태우는데… 주소와 가격을 미리 확인했음에도 기사는 내가 떠난 뒤, 태국어를 못하는 친구에게 두 배의 요금을 요구했다. 혹시나 싶어 전화를 걸었고, 내가 직접 기사와 통화를 하자 그는 핑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거긴 거리가 멀잖아.” “짐도 크잖아.”


나는 태국어로 말했다. “저녁시간이라 길도 안 막히고 고속도로 탈 필요도 없는데, 왜 미터기를 안 켜시나요? 저 가방 사이즈는 추가 요금을 낼 정도가 아니잖아요.” 그러자 기사는 느닷없이 이렇게 답했다.

“너 태국어 할 줄 아네?”


그 순간, 설명하기 힘든 실망감이 몰려왔다. 동시에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러웠다. 그 말을 이해한 게 나 혼자였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태국인들도 말한다. 자기들을 부끄럽게 하는 집단 중 하나가 바로 택시기사들이라고. 외국인을 상대로 흥정부터 시작하는 택시, 툭툭 기사들, 그리고 외국인과 현지인을 차별하는 음식점들이라고. 얼마 전에는 1500밧짜리 게살 오믈렛 집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원래는 평범하지만 맛있어 미슐랭까지 받은 집이었는데, 입소문을 타며 가격이 터무니없이 뛰었다. 어느새 가게는 외국인들로 가득했고, 현지인과 외국인을 차별해 대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이슈가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어두운 면들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한국만 해도 유명 관광지의 바가지요금은 늘 뜨거운 감자다. 중요한 건, 이런 부조리를 당연시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균형을 유지한다는 점 아닐까.


이제 나는 태국어로 원하는 말을, 불만을 표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택시를 탈 때면 긴장이 된다. 호구가 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호구가 될 수밖에 없는 외국인의 삶. 어쩌면 그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느끼는 순간이 택시 안에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택시에 앉아 있는 순간마다, 나는 태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호구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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