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더위가 두렵다면 태국엔 오지 마세요》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계절

by 사막의 소금


1. 더운 나라에 산다는 것

태국, 동남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더위다. 물가가 싸고 먹을 것도 많아 언제나 그리운 곳이지만, 땀과 끈적임, 숨 막히는 열기를 떠올리면 떠날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래서 내가 태국에서 살 계획을 알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일 먼저 ’ 거긴 여름만 있는 나라잖아요. 더운 거 괜찮아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도 워낙에 더워졌는지 지난주 엄마는 체감온도가 37도라며 죽겠다고 하셨다. 여기가 이렇게 더운데 방콕에서는 어떻게 살고 있냐고. 그 주가 정말 덥긴 했는지 지인들로부터 이곳의 더위 걱정을 여러 번 받았다. 그래서 사실, 에둘러 말했지만 미안하게도 요즘 태국은 우기라서 30도를 조금 넘는 정도의 더위이다. 습도가 있어서 지칠 때도 있지만, 강하게 내리는 비는 열기를 자주 식혀줘서 꽤나 참을만하다. 오히려 쏟아지는 비를 보고 듣고 있자면, 그 풍경만으로도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2. 잊지 못할 더위

나에게도 잊지 못할 태국의 더위가 있다. 하나는 첫 태국 여행 때 느꼈던 더위 그리고 또 하나는 작년에 겪은 더위. 첫 태국 여행은 5월 중순에서 말로 이어지는 15일간의 여행이었다. 동남아 여행이 처음이기도 했고, 연중 가장 더운 시기에 여행을 왔다. 심지어 여행 정보도 없이, 돈도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지도 하나 들고(유심도 없었다) 걷고 또 걸었다. 아마 만보기로 측정했다면, 하루에 5만보 이상은 걷지 않았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카오산로드에서 숙박을 할 때였다. 여행자의 거리라고 하니 꼭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방콕에서 머무는 1주일가량을 카오산로드에서 지냈다. 그 도착 첫날에 뭣도 모르고 주변 왕궁을 모두 돌아보겠다며 근처 한인여행사에서 얻은 지도 하나를 들고 돌아다녔다. 종이 지도를 들고 거리를 가늠하지 못한 채 길을 묻고 또 물으며 헤맸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대화는 쉽지 않았지만, 현지인들은 양손을 엑스자로 그어 ‘너무 멀다’고 몸짓으로 알려주곤 했다.


숙소가 있던 카오산로드를 기점으로, 아침에 간단히 국수를 먹고 강 건너 사원들을 걸어서 구경하러 다녔다. 끝없이 덥고 넓었던 궁전, 누워 있는 불상의 귀여운 모습,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니 숨이 찰 만큼 가팔랐던 왓아룬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어느 사원에서는 입장권을 사니 물을 한병 주었고, 그것이 유일한 살길처럼 느껴질 만큼 덥고 또 더웠다. 뜨겁게 달궈진 시멘트 바닥은 물을 쏟으면 칙-하고 소리를 내며 증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얼마 못 가 내 샌들은 그 열기에 끊어져 버렸으며 어깨에는 2도가 넘는 화상 자국이 생겼다. 팔부터 어깨, 등까지 모두 물집으로 뒤덮여 여행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까지 나는 엎드려 잘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43,44도는 평균 날씨였던 작년의 5,6월

3. 죽을 만큼 더운 5월

지난 5월의 더위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죽을 맛이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수도를 튼 것처럼 똑똑하고 떨어졌고, 차에 시동을 켜면 대부분 43,4ㄱ도라는 숫자가 찍혔다. 정말 더웠던 어느 날은 외부온도가 48,49도로 찍히기도 했다. 그 시기에는 식당에 가도, 친구들을 만나도 모두 덥다는 말과 죽겠다, 머리가 아파서 내내 누워있다는 말만 들려왔다.


그때 처음 알게 된 말이 현지인들에게 태국의 날씨는 우기와 건기로 나뉘지 않는다고 한다. 런(ร้อน)-런막(ร้อนมาก)-런막티숫(ร้อนมากที่สุด), 런짜따이(ร้อนจะตาย) 이렇게 나뉜다고들 했다. 그 뜻은 더움-정말 더움-최고 더움 혹은 죽을 만큼 더움이다. 평소 더위를 크게 타지 않는 편이라 그저 웃어넘겼는데, 작년의 5,6월은 정말 길에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덥고 또 더웠다. 곧 죽을 것 같은 더위라는 게 아마 이런 의미인가 보다 이해가 되었다.



4.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계절

하지만 이 시기에는 과일이 정말 다양하게 풍부하고 심지어 가격도 싸다. 한국의 여름에 야채와 과일이 싸고 맛있는 걸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최근에는 망고, 망고스틴, 용과가 킬로당 20밧(천 원 정도), 람부탄이 30밧, 두리안도 100밧 정도이다. 과일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시장에 가면 한주가 다르게 새로운 과일들이 또 등장한다. 심지어 트럭에 과일을 싣고 다니며 판매하는 분들은 망고나 망고스틴을 4킬로에 50밧(2천 원 조금 넘는)에 팔기도 한다.


모두 다 다른 망고들. 흔히 망고가 아니라 품종으로 부른다

그리고 동남아 나라들의 마스코트 과일인 망고는 그 종류가 정말 수십 가지이다. 올해 먹어본 망고의 종류만 해도 가히 10가지는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사실을 모르고 한국에서는 그저 크기가 큰 코리끼 망고, 일반 망고, 애플망고로만 종류를 나누어 사 먹었었는데, 망고가 어떤 때에는 맛있는데 어떤 때에는 시고 어떤 때에는 밍밍했다. 그럴 때면 그저 ‘이번에는 뽑기를 잘못했네 ‘하며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를 노리곤 했었는데 아예 품종 자체가 다른 망고였던 것이다.


종류대로 맛이 다른 망고! 모두 다 너무 맛있어!!

옆 동네에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농장에서 직접 따온 망고를 파는 분이 있어서 킬로당 20밧을 주고 사왔다. 차고에 노랗게 잘 익은 망고들을 산처럼 쌓아 놓고 있는 모습은 더위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게했다. 총 5종류의 망고를 팔고 계셨는데, 종류가 같더라도 망고의 사이즈, 익은 정도가 다르면 또 새로운 맛이 느껴지기도 해서 신기했다. 친구가 2킬로의 망고를 사줬는데, 인심 후한 사장님은 망고를 4개나 더 넣어주셨다. 거의 1킬로를 더 얹어주셨다.


이렇게 덥고 더운, 그래서 살기가 쉽지 않은 계절의 태국이지만 이 시기에만 정말 끝내주게 맛있고 가격도비교할 수 없을만큼 싼 과일들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심지어 현지인의 상당수는 집이나 농장에서 과일나무를 키우기 때문에 이웃끼리 바나나나 파파야, 망고 등을 자주 나눠먹기도 한다. 그래서 태국인들과 조금 친해져보면 생각치 않은 정을 주고받게 된다.


그래서 나는 첫 여행 이후로부터 매년 태국 여행을 계획할 때에는 시원할 때보다 더운 시기를 일부러 찾아왔다. 밥보다도 과일!이라 외칠 만큼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1,2주간 실컷 과일을 배불리 먹고 나면 뭔가 남은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이다. 또 이 시기에는 비행기표도 아주 싸다.(모두가 피하는 시기) 그러니, 과일을 좋아하고 실컷 먹고 싶은 사람 혹은 더위 따윈 가소롭게 조소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분들이라면 5,6월의 태국 여행을 추천한다. 다만 이 맛에 한번 들이면 빠져나가기 쉽지 않을 거라는 경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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