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가 아닌 친구가 되기 위해 선택한 길’
태국 여행을 해마다 빠지지 않고 다닌 지 삼 년째, 나는 문득 외국어가 아닌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십여 년 전 처음 여행했을 때는 여행자의 거리를 벗어나면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고, 나는 화려한 쇼핑몰보다 사람 냄새나는 동네 시장을 더 좋아했기에 그들의 삶에 녹아들려면 언어를 익히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태국어 자음과 모음을 검색하니 한국어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거기에 장모음, 단모음, 성조까지 있으니 첫 관문부터가 너무 높아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 글자 하나하나가 예쁘고 사랑스러워, 이름을 외우는 것은 힘들었지만 모양과 소리를 기억하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열정이 대단해, 이른 출근길과 점심, 퇴근 시간까지 하루에도 몇 시간씩 자음과 모음을 쓰고 또 써 내려갔다. 콩글리시를 하듯 원하는 소리를 태국어로 바꿔 적어보거나, 말도 안 되는 문장을 혼자 만들어 보기도 했다.
나는 매체 문외한이라 유튜브보다 책을, 전자기기보다 노트와 펜을 가까이했다. 초등학교 때나 써봤던 연필과 지우개, 한자 학습용 노트를 사와 한 권 두 권 빼곡히 채워갈 즈음에는 손가락 마디마다 마비가 오는 듯했다. 그 고통이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퇴직서를 내고 태국 한 달 살기를 위해 방을 구하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도착하는 그날까지 싸왓디카, 커톳카, 헝남 유티 나이카 같은 기본적인 문장을 성조에 맞춰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설렘이 밀려왔다.
렌트한 집은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여러 차례 여행하며 알게 된 동네인데, 그곳에서는 나를 제외한 외국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곳을 선택했다. ‘진짜 태국’에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입국심사 때부터 영어가 아닌 태국어로 인사했고, 편의점이나 시장에서도 늘 태국어를 쓰려했다. 신기하게도 2주 정도 지나자 태국인 친구들이 생겼고, 말을 정확히 할 수 없는데도 대화의 맥락이 조금씩 잡히기 시작했다.
가령, 한 친구와 스쿰빗에 갔을 때. 몇 년 동안 지겹도록 다닌 동네라 큰 감흥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지인과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는 변화가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다. 또 그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엿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한국인의 상대적으로 하얀 피부, 정돈된 이미지를 부러워하는 태국인들은 내가 들을 거라는 생각을 못하곤 곁에 서서 “피부가 좋다, 예쁘다, 하얗다”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카페에서는 내가 친구의 애인인지, 왜 사귀지 않는지 묻기도 했다. 당시 친구도 내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그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를 통해 그의 마음을 엿보게 되기도 했다. 당시 나는 모른 척했지만, 얼굴이 붉어진 친구의 모습은 지금도 웃음이 난다.
한 달 살기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생각보다 귀가 빨리 트인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학습 서적을 구해 공부를 이어갔다. 비록 1년 중 태국어를 쓸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지만, 계속 노력하고 싶었다. 지금까지도 그 습관은 이어지고 있다. 전문적으로 배우진 않았지만, 혼자 사전을 찾아보고 친구들의 말을 유심히 들으며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사용해 보려 노력한다. 그래서 문장은 여전히 서툴고 성조도 자주 틀리지만, 내가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주제로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일을 즐겁게 한다.
비단 나뿐 아니라 만나는 모든 태국인들도 함께 즐거워하는 듯하다. 식당에 들어와 앉을 때부터 긴장하던 종업원들은 이내 태국어로 주문을 하면 환하게 웃는다. 또 태국인들의 문화처럼 간단한 인사말을 전하면 의례 이런저런 우호적인 대화들이 오가곤 한다. 요즘에는 어느 지역으로 여행을 가든 물건을 사고 나서는 꼭 근처 맛집과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잊지 않는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네이버나 인스타를 찾아보고 계획을 세웠다면, 요즘은 구글 맵의 후기와 근처 주민들이 추천해 주는 이런 맛집과 명소를 찾아다니는 편이다. 그리고는 가게 앞을 지나며 꼭 감사인사와 후기를 간단히 전한다. 서로 행복해지는 시간이다.
그리고 태국어가 늘수록 피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외국인인 나를 옆에 두고 태국인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몰래 엿듣는 재미이다. 어떨 땐 좀 아찔하기까지 한 재미. 지난주 치앙마이행 슬리핑 기차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직원과 맞은편 좌석의 태국인 남자가 “주말엔 중국인, 평일엔 외국인 승객이 가득하다”며 대화하는 모습에서, 능숙하지 않은 외국어로 응대하다가 가끔 모국어로 대화할 수 있을 때의 기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둘은 마주 앉은 나와 영국 승객에 대한 간단한 말을 붙였다. 얼마 후, 영국인 승객이 주문한 음식이 오지 않아 곤란해하자 내가 아주머니를 불러 상황을 설명해 주었는데, 이 모습을 본 직원은 내가 태국어를 할 줄 안다며 놀라워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제발 주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심 좀 하라고. 당신들의 말을 다 알아듣는 외국인이 옆에 있을 수도 있으니.
이런 경험은 자연스레 한국 문화를 돌아보게 했다. 나처럼 그 나라를 좋아해 언어까지 배우는 외국인들이 한국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한국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몰래 듣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태국에서도 느끼는 거지만 정과 사랑이 많은 민족들은 그만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고 자칫 판단하는 말을 내뱉게 된다. 그것이 좋은 의미이든 그렇지 않든. 물론 나를 불편하게 했던 순간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이 경험들은 역지사지의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즐거움과 행복은 단지 그들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이 도전과 노력은 나를 계속 배우게 하고 변화, 성장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하고 싶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생각과 삶을 알고 싶다. 한국어에는 없는 태국어만의 사랑스러운 표현들도 더 알아가고 싶다.
당신과 대화하고 싶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지금처럼 배우고, 실수하더라도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