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설렘 사이, 그 짜릿함에 대하여’
어려서부터 버킷리스트가 늘 넘쳐났던 나는, 생각해 보면 도파민 중독자였던 것 같다. 계획적이고 차분한 성격과는 반대로 늘 새로운 경험을 원했고 극한으로 자신을 치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 없이 무작정 혼자 태국에 와서 방을 구하고 태국살이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런 연유였다. 스무 살 남짓 적어놓은 ‘태국에서 살아보기’라는 한 줄의 메모 때문이었다.
낯선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이 새롭고 도전이고 경험이었다. 매일 먹는 음식부터 날씨, 언어 심지어 아주 사소한 일들 즉 일어나고 자는 시간까지. 가령 뜨거운 여름, 선선한 저녁에 동네를 걸으며 운동하던 한국에서의 오래된 습관은 방콕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해가 뜨는 오전 7시부터 해가 지기까지 옷이 젖을 만큼 더위는 강렬했고, 해가 진 저녁 시간에는 번잡한 번화가가 아니면 너무도 적막했다.
처음 두어 달 밤까지 걸어 다니며 야식을 먹는 나를 본 태국인들은 나에게 경고까지 해주었다. 한국에서는 괜찮을지 몰라도 여기선 위험하다고. 외국인 여성이 저녁시간에 혼자 다니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위험해 보이니, 낮에만 다니라고.
그리고 태국에 살면서 넘어야 하는 큰 산 중의 하나는 음식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쏨땀 뿌 빨라‘. 작은 게와 검은 액젓을 넣은 쏨땀은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강한 액젓의 비린내와 쏨땀 특유의 매콤하고도 새콤한 맛의 조화.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이걸 먹어야만 진짜 태국에서 산다”며 나를 돌려댔다. 발끈한 나는 삼일 연속 쏨땀 뿌 빨라를 먹었고, 그 맛이 조금 익숙해질 즈음 심한 복통과 설사를 2주간 겪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진이 다 빠진 나는 결국 위장이 뒤틀리는 통증에 병원을 찾았다. 이에 의사는 최근에 뭘 먹었는지부터 물었다. 쭈뼛거리며 쏨땀 뿌 빨라라고 말하자, 그는 한심스러운 듯 나를 보았지만 별말 없이 이해했다. 나를 놀리던 친구들도, “외국인들은 음식 조심해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계속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싶다.
음식에 대한 도전 정신은 강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원래의 습성 때문에, 여행지를 고를 때에는 늘 익숙한 곳을 맴돌았다. 낯선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만의 안전장치였는지도 모른다. 숙소도 늘 비슷한 구역의 비슷한 컨디션이었고, 그저 새로운 식당을 찾는 정도가 나름의 일탈이었다.
그래서 태국에서 산지 어언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이상하게 북쪽 여행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매번 익숙한 파타야, 푸켓, 후아힌. 여행지 중에서도 손꼽는 여행지만 다녔던 것이다. 이대로 태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몇 달 전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기차표부터 끊었다.
치앙마이 여행의 키워드는 단 두 가지였다. 슬리핑 기차를 타는 것, 그리고 오토바이를 질리도록 타고 다니는 것. 그래서 1주일 동안 150cc의 오토바이를 빌려 북부를 여행했다. 오토바이 운전은 방콕에서도 매일 했지만, 장거리 운전은 처음이라 의욕만 가득하고 준비가 마땅치 않았다. 초행길이라 휴대폰으로 네비를 봐야 했지만, 일찍 배터리가 닳아버린 휴대폰은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다.
일찍 어둠이 찾아온 낯선 길을 지도 없이 달렸던 그 순간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어떤 날은 하루에 7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운전해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실신하듯 쓰러지기도 했다. 산 꼭대기에 올랐는데 오토바이 기름이 바닥나 낭패감에 쩔쩔맨 적도 있다. 또 홍수가 난 지역 근처의 산을 오르다가 산사태로 망가진 길을 지날 때면, 괜스레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오토바이의 속도를 줄이고, 작은 소리로 나를 다독이며 ‘스스로 무덤을 판다‘는 속담을 떠올리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과 ‘낯섦’이 주는 짜릿함 사이를 오갔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 순간에만 진짜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감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건, 어쩌면 그 감각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든 그 순간 느끼는 짜릿함은 어떤 것도 방해하지 못했다. 방콕에서 누리지 못했던 속력의 쾌감은 온몸을 들썩이게 만들었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열대우림의 웅장함은 이유 모를 눈물을 쏟게 했다. 그 순간, 방금 전까지의 불안과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터질 듯한 감동과 기쁨이 온몸을 지배했다.
하지만 슬리핑 기차의 경험은 달랐다. 좋은 티켓을 미리 예약했음에도 기차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장장 13시간의 여행은 온몸을 녹초로 만들었다. 이른 아침, 좌석형으로 바뀐 자리에 앉아 주문한 모닝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슬리핑 기차는 이번 경험으로 족하다. 아주 비싼 값에 경험을 하나 산 셈이다. 이렇게 또 한 부분 성장했으니 됐다.
왜 슬리핑 기차를 타겠다는 나를 그토록 많은 태국인들이 말렸는지, 이제 이해가 되어 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러한 만류에도 기어코 해내는 이 성미. 참 나답다고도. 비교적 신식 열차임에도 온갖 벌레에게 물어뜯긴 나는, 돌아와서 며칠을 잠 못 이루며 온몸을 긁었다. 그때마다 ‘이건 인생에 딱 한 번이면 족해! “라며 나를 훈계했다.
이렇게 낯선 경험이 주는 즐거움은 비단 좋은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것들을 포기하지 못한다. 때로는 낯선 경험이 상처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그 상처조차도 내 삶의 색을 더 짙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계획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던 어린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들. 하지만 결국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낯선 경험이 주는 즐거움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