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마지막 해, 남은 열정까지 더하기
한국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할 당시 교수님이 하셨던 말이 있다.
많이 봐라
패션잡지뿐만 아니라 전시회와 패션 스토어를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전시된 물건과 주변 환경의 조화를 관찰하고, 계속 보다 보면 (잘은 몰라도) 감각이라는 게 생기니 열심히 보러 다니라는 말이었다.
가끔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독특한 아이디어는 한 분야만 공부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책을 읽고, 전시나 컨퍼런스와 같은 이벤트에 참여하다 보면 그곳에서 얻은 정보와 지식들이 조합이 되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그 ‘감각’을 기르기 위해,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기 위해 (그게 어디에 사용될지 모르지만) 부지런히 다니기 시작했다. 국내 잡지뿐만 아니라 당시에 접하기 어려웠던 해외 잡지를 구해서 읽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명동과 홍대에 있는 옷가게, 상점들을 방문하고 전시회에 참석했다. 워낙 비주얼을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이게 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겐 일종의 놀이 같았다.
영국으로 온 뒤로는 여행 계획을 짤 때마다 해당 도시의 예술 관련 전시회 일정을 체크하고 이벤트 일정에 맞추어 여행을 다녔다. 어차피 가고 싶었던 곳인데 이벤트에도 참석하고 해당 도시의 관광지도 방문하는 것이 비용과 시간적인 면에서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이미지와 트렌드를 보는 감각을 키웠고 이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의 머릿속에 비주얼 라이브러리가 구축이 되었다. 실제 여행을 하며 얻은 아이디어들은 트렌트 예측 (Trend Forecasting)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썼을 때, 내가 큐레이팅 했던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도움이 되었다.
아트 & 디자인 스쿨 학생이거나 관련 분야 종사자라면 이벤트를 방문할 때 ‘내가 이것만은 꼭 하겠다’라는 목적(purpose)을 가지고 있으면 좋다. 예를 들면,
1. 현재 & 미래의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 아무 이유 없이 생기는 트렌드는 없다. 트렌드는 (직접적이든 잠재적이든) 소비자들의 욕구를 의미한다. 전시회를 관람하다 보면 눈에 띄는 트렌드 3-4가지 정도를 인지할 수 있는데, 이때 트렌드가 생긴 이유, 즉 소비자가 원하는 바와 환경적인 요인을 생각해본다. 또한 디자이너가 해당 트렌드를 어떤 방식으로 제품(또는 작품)에 반영시켰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된다.
2. 영감(inspiration)을 얻기 위해
: 아트, 패션, 디자인은 같은 범주 안에서 서로 영향을 미친다. 패션을 공부한다고 해서 패션 관련 전시회만 가는 건 생각의 폭을 넓히고 영감을 받을 기회를 제한하는 일이다. 영국 트렌드 정보 회사 WGSN의 트렌드 분석가들도 비주얼 머천다이징 트렌드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은 아트 전시회를 방문하여 아이디어를 얻는다.
3. 디자이너, 아티스트, 갤러리스트, 바이어, 브랜드 홍보 담당자들과의 네트워킹
: 세계 각지에서 온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업계 종사자들을 직접 만나 네트워킹을 할 기회를 쉽게 가질 수 있다. 이들과 대화하면서 다양한 도시의 아트 & 디자인 씬에 대한 이야기부터 인더스트리 관련 정보도 교환할 수도 있다.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몇 달 간격으로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유럽 내에서는 이동하기 쉽다는 장점 때문에 이런 경우가 빈번하다) 예를 들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만난 디자이너를 파리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만날 가능성이 크므로 관계를 잘 유지해놓으면 좋다.
4. 미래의 프로젝트를 위해 자료 수집
: 내가 일했던 큐레이팅 에이전시의 디렉터들은 미래의 프로젝트(전시 기획)를 위해 주요 전시회를 다니며 떠오르는 신진 작가와 디자이너에 대한 정보 수집을 중요하게 여기곤 했다.
전시회를 방문할 때 기억하면 좋은 '유용한 팁'을 이야기하자면;
첫 번째, 반드시 명함을 준비할 것.
사람들에게 당신을 소개하고 그들과 네트워킹할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명함에 들어갈 내용으로는 당신의 이름, 이메일 주소, 개인 웹사이트 주소면 충분하다.
두 번째,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프레스 키트(Press Kit)를 눈여겨보자.
프레스 키트 (또는 프레스 팩) 란 홍보를 목적으로 제작되는 것으로 홍보할 사람 또는 브랜드의 히스토리, 제품, 연락처 등을 포함한 정보가 담겨있는 묶음을 말한다. 디자인 위크를 다니다 보면 각 브랜드의 특성에 맞게 디자인된 예쁜 프레스 키트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마케팅에 종사하는 사람 또는 마케팅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세 번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면 블로거를 프레스(press)로 간주하는 곳이 많다는 것을 기억할 것.
전시회를 다니다 보면 프레스와 바이어들만 입장 가능 한 곳들이 있다. 요즘 전문 블로거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블로거도 프레스로 간주하는 곳이 많다. 특히 학생인 경우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하지 말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면 프레스로 입장하는 걸 시도해볼 것.
유럽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전시회 & 박람회를 아래에 소개한다.
Milan Design Week (Milano Salone) : 중점적으로 보아야 할 곳은 Salone del Mobile (Rho Fiera), Tortona, Brera, Ventura
London Design Festival : V&A 뮤지엄, 100% Design, Tent London, Design Junction. 전시뿐만이 아니라 디자인 인더스트리와 트렌드 관련 토크도 많이 열리니 참여해보는 걸 추천.
Dutch Design Week : 네덜란드 디자인 스쿨 중 하나인 에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 (Eindhoven Design Academy) 졸업 전시도 함께 열린다.
Venice Biennale : 2년마다 아트 전시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다.
Documenta : 5년마다 독일 카셀에서 열린다.
Art Basel : 아트 바젤뿐만 아니라 바젤에 있는 Fondation Beyeler와 같은 아름다운 뮤지엄들도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