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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렌드버터 Jan 21. 2021

굿바이, 노팅엄 - 영국에서 패션마케팅 공부하기

Part 4. 마지막 해, 남은 열정까지 더하기

거의 1년 동안 작업해왔던 트렌드 북을 드디어 학교에 제출했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노팅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짐을 싸고 기숙사 방을 정리한 후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노팅엄을 떠나기 전날 밤, 영국에서 보낸 시간을 천천히 되돌아보았다.

Bittersweet

지난 3년간의 유학 생활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아마도 ‘bittersweet’ 일 것이다. 영국식 대학 교육을 경험하고 새로 운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은 달콤함 그 자체였다. 주어진 과제를 하나씩 해낼 때마다 희열감을 느꼈고 영어라곤 기본적인 것밖에 할 줄 모르던 내가 영어로 글을 쓰고 발표를 한다는 게 꿈만 같았다.


학과 공부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내가 이 지구에서 매우 작은 점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 삶을 살아가는데 한 가지 방식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직진을 못 한다면 돌아가면 된다는 점 등등.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가치들을 하나씩 깨닫게 되면서 내가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반면, 외로움과 자괴감으로 범벅된 쓰디쓴 시간도 있었다. 영국으로 오고 나서 1년 동안 완전히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영어로 표현하기에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나보다 준비한 건 별로 없으면서 말로 뻥튀기하는 영국 애들이 괘씸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들은 잘하고 있는데 나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고 수많은 영국 학생들 사이에서 외국인으로서 느끼는 외로움이 생각보다 꽤 컸다. 하지만 독하게 쓴맛을 경험한 만큼 난 더 단단해져 있었다. 힘든 유학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이대로 그만두면 이도 저도 아니라는 게 빤히 보였다.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제자리에서 묵묵히 견디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고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3년 전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나는 분명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음을 확신한다. 영국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한없이 낮아졌고 겸손해졌으며 매일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교훈을 토대로 나만의 원칙과 가치관을 세우기 시작했다. 개인의 능력과 상황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한걸음 물러서서 기다리는 여유도 생겼다. 지난 3년간 지적인 향상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성장해 있었다.


쓴맛과 달콤함이 공존했던 지난 3년. 이제는 작별할 시간.


굿바이 노팅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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