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마지막 해, 남은 열정까지 더하기
유럽에서 패션 마케팅을 공부하고 있다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방문해볼 것을 추천한다. 패션 브랜드가 디자인 이벤트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여러 가지 사례들을 직접 보고 경험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곳이기 때문이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구 박람회 중 하나이다. 인테리어와 제품, 가구 디자인을 중심으로 이벤트와 전시가 도시 곳곳에서 열리며 수많은 바이어와 기자, 관광 객들이 방문한다. 실제로 박람회를 가보면 디자인뿐만 아니라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인테리어 컬렉션을 가진 패션 브랜드들은 이벤트 기간 동안 신제품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브제와 추상적인 개념 중간에 위치한 디자인은 상업성이 짙은 패션과 (상업적이지 않은) 예술 사이의 간극을 매워주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알고 있는 마케터들은 디자인이 가진 위치를 활용하여 브랜드 가치를 강화하고자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패션 브랜드들은 단순히 신제품을 전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그들이 큐레이터가 되어 전시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특정 테마를 정하고 디자이너에게 작품 제작을 의뢰한 뒤 디자인 오브제를 전시하는 포맷이 바로 그것이다. 한 예로 2016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나이키는 막스 램, 마르티노 갬퍼 등 다양한 디자이너와 협력하여 ‘무브먼트’를 주제로 한 디자인 인스톨레이션 전시를 선보였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주제를 디자인 전시라는 포맷을 활용하여 신선함을 더하고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콘셉트를 각인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이밖에도 패션 디자이너가 가구 아티스트가 되어 작품을 선보이고 제품 디자이너와 패션 브랜드 간의 콜라보레이션 등 다양한 마케팅 사례들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만나볼 수 있다.
1학년 때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처음으로 갔었고 3학년이 되었을 때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두 번째로 방문할 땐 전시나 이벤트에 직접 참여해서 현장을 엿볼 수 있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인드가 또 발동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디자인 위크에 참여하는 회사 이메일 리스트를 찾아냈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하고 전시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이력서와 함께 보냈다.
80개 회사에 이메일을 보냈고 대략 20곳에서 답장을 받은 걸로 기억한다. 이번 해에는 전시에 참여할 계획이 없거나 이미 인원이 충원되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준비된 계획이 없으니 3월 말에 다시 연락하라는 회사도 있었다. 다섯 개의 회사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는데 그중 한 곳이 메타 아이디어(Meta-idea)라는 밀라노에 있는 마케팅 에이전시였다. 메타 아이디어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전시 디자인, 마케팅 전략을 담당하는 에이전시로 이베이, 삼성, 나이키를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었다.
총괄 디렉터인 다비드는 현재 이베이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함께 팀이 되어 일하면 좋을 것 같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밀라노에서 만날 날짜와 시간, 장소 등을 정했다. 시간이 지나 밀라노에서 다비드와 그의 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시 세트를 제작하는 것부터 프레스 뷰를 준비하고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일들을 함께 하였다. 세트가 모양새를 갖추어 나가는 과정과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걸 지켜보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다비드는 내가 어색함을 느끼지 않도록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를 소개해주었고 현재 작업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다비드에게 종종 질문을 했다. 일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현장에서 작업하다 보면 미처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 때가 많아요. 그때마다 항상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한, 팀원들에게 리더로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해요. 리더가 예민한 모습을 보이면 팀원들도 덩달아 당황하게 되고 긴장감이 느껴지는 상황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다비드 팀과 함께하는 마지막 날, 오피스로 초대를 받았다. 사무실을 둘러보고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면식도 없는 학생의 이메일에 선뜻 응해주고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준 다비드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