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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재 May 08. 2024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예쁘고 싶다


출근길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섰다. 이제 막 꺼진 초록불은 사거리의 차들을 순서대로 다 보내야만 건널 수 있다. 한참을 서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에어팟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내리는데 발아래 소박하게 피어있는 작은 들꽃에 시선이 갔다.


사진출처_온재캘리그라피


‘쟤는 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꽃을 피우고도 수줍게 웃고 있을까?’ 작은 콩만 한 노란 꽃을 보는데 갑자기 눈이 시큰해지더니 그 아이와 내가 겹쳐 보였다. 찰나에 많은 감정이 지나쳐 갔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든 이름도 모르는 들꽃이 그날 이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일까?


사진출처_온재캘리그라피


그렇게 살고 싶었나 보다. 누군가는 한번 태어난 인생 이름을 날릴 정도로 큰 업적을 남기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스포트라이트 한 번은 받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된 것 같다. 묘한 마음이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은데 또 사는 동안은 예쁘고 싶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그저 존재 자체로 스스로에게 예쁜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날 그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처럼 말이다.




기다리는 사람 아무도 없지만 피어나야 할 때를 알고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고, 물러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자리는 비워주는 삶을 살고 싶다. 상상해 보니 참 멋진 모습인 것 같다.


사진출처_온재캘리그라피


오평선 작가님의 [꽃길이 따로 있나, 내 삶이 꽃인걸]이라는 책 속에 ‘남겨진 가족들이 덜 혼란스럽게 잘 정리해 둘 것..‘이라는 문장이 준 파장이다. 화려하게 피어 존재를 각인시킨 삶은 어쩌면 떠난 후 남겨진 이들의 마음에 잿빛 구름을 두고 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들꽃이고 싶었던 것 같다. 조용히 주변에 머물다 날아간 뒤에도 티가 나지 않아 남겨진 이들의 마음이 너무 무겁지 않기를 딱 그만큼만 예쁘게 머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작은 소망 하나 있다면 초록 잎이 예쁘게 우거진 산속 작은 암자 돌계단 아래 노란 꽃으로 잠시 머물다 가는 삶이면 좋겠다. 꼭 노란빛의 꽃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람에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풍경소리, 샛소리를 벗 삼아 예쁘게 피었다 조용히 날아갈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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