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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재 Feb 26. 2024

퍼즐 같은 인생의 제자리 찾기

몇 피스짜리 인생을 살고 계신가요?

인생을 사는 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확히 조사를 해 보거나 통계를 찾아본 적은 없지만 몇 안 되는 소수일 거라 짐작해 본다. 그런 이유로 모든 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중이다.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었고 즐기고 있으니까.


글출처_메리골드의 마음사진관 / 사진출처_온재캘리그라피


몇 년 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작은아이가 무심코 던진 질문에 순간 얼음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에게 잠시 '타임!'을 외치고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던 날.


아들)"엄마는 꿈이 뭐야? 어른이니까 과거형으로 물어봐야 하나?"

딸)"엄마는 이미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 꿈 찾은 거 아니야? 하물며 그 일을 잘하기까지 하니까 꿈을 이룬 거잖아."

아들)"좋아하는 일을 찾은 게 꿈을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나)"..." 눈동자가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아들)"엄마 렉 걸렸다. 하하하 기다리자"


워낙 어려서부터 친구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온 녀석들이라 엄마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진 머릿속을 부지런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진출처_온재캘리그라피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도 맞고, 정말 푹 빠져서 미친 듯이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직 만족은 못하고 있지만 좋은 인사이트를 통해 조금은 인정을 받은 느낌은 든다. '그럼 된 건가? 꿈을 이룬 건가?' 물먹은 스펀지처럼 갑자기 뇌가 무거워지고, 달리기를 한 듯 호흡이 답답하고 목이 막히는 이물감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던 것도 아니었고, 아이들도 무게감 없이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그저 혼자 급 심각해졌을 뿐이다.




글씨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의 기억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본다. 그 당시 소풍 가기 전날처럼 늘 흥분상태였던 것도 같고, 잠을 안 자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해 쪽잠을 자면서도 콧노래를 부르며 글씨를 썼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전업주부 역할 놀이에 푹 빠져 살다가 새로운 자아를 만난 느낌에 다른 건 눈에 뵈지 않았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말씀하신 안중근 의사도 아니건만 글씨를 쓰기 시작하고 하루도 펜을 잡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러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고 그냥 재미있어서 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글씨를 쓰다 보면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아이들 덕분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냥 미처 있었다는 말로 정리가 된다. 그 당시에는 육아와 살림도 기본만 하면서 머릿속이 온통 글씨로 가득했던 시간들이었다.



하루종일 수업하며 글씨를 쓰고 퇴근 후 집에 오면 잠시 주부의 역할에 집중한다. 그러고 나서 부지런히 거실에 자리 잡아 놓은 책상 앞에 앉아 쓰고 싶었던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좀 쉬라고 잔소리하는 가족들에게 쉬고 있는 거라며 기분 좋은 답을 건네본다. 캘리그라퍼라는 자리에서 써야 하는 글씨는 말 그대로 일이다. 물론 수업 중에 쓰는 그 순간도 행복하긴 하지만 퇴근 후 쓰고 싶었던 글씨에 집중하는 시간은 쉼이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호흡이 고르게 돌아오고 물 먹은 듯 무겁던 뇌도 가벼워진다. 머릿속에 정리된 꿈을 아이들에게 들려줄 준비가 된 것이다.


"얘들아, 꿈 정리 됐어. 엄마는 글씨 쓰는 것이 너무 좋아서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어. 그게 꿈이야. 글씨를 잘 써서 유명해지고, 1등이 되고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숨이 붙어 있는 그 순간까지 글씨를 쓰다 죽고 싶어. 아주 고상하게 책 보고 글씨 쓰면서 그렇게 살다 가는 게 꿈이야. 그래서 좋아하는 이 일이 싫어지지 않게 밀당을 아주 잘해 볼 생각이야. 엄마 꿈 멋지지?"


사진출처_온재캘리그라피


적당히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포근한 흔들의자에 기대 책을 보다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을 만난다. 사브작 움직여 깨끗한 종이와 좋아하는 펜 한 자루 꺼내 끄적끄적 적어 책 사이에 꽂아 두고 다시 흔들의자로 가는 상상.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을 꿈꾸며 오늘도 입가에 미소가 걸릴 만큼 딱 그만큼의 행복을 글씨를 통해 누려본다.


멋지게 정리한 꿈에 하나 더 추가된 글쓰기. 타인의 글을 옮겨 적는 일도 너무 행복하고 위로받는 일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나의 언어로 위로를 전하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특별할 건 없지만 공기처럼 늘 곁에 머물며 편안함을 주는 글과 글씨를 쓰는 삶. 이미 이룬 꿈도 있고 진행 중인 꿈도 있다. 상상하는 꿈의 완성작이 얼마나 클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저 한 조각 한 조각 퍼즐을 맞춰가고 있고 그 과정에 작은 성취를 맞보며 감사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꿈이라는 작은 퍼즐조각을 찾는 일. 그 퍼즐을 하나하나 올려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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