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종이 위에 쓴 손글씨가 더 와닿을 때가 있지.
세상에는 좋은 글을 써 주는 작가님들이 많다. 백 마디의 말보다 딱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전할 수 있는 그런 글이 있다. 덕분에 글씨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한 사람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마음에 와닿고 시선을 잡는 글을 만나면 주저 없이 펜과 종이를 꺼내고 자리를 잡는다. 글씨를 쓰는 일은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 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좋은 글을 만나거나 마음속 이야기를 남겨두고 싶은 모든 순간에 망설임 없이 종이 위에 글씨를 쓴다.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루다.
신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했던가? 그런데 왜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앞에서 신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일 거라는 말로 아픔을 외면하면서 말이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힘듦이 말로 나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삼켜지지도 않는 그런 날이 있다. ‘과연 정말로 신은 이 정도 고통은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보낸 것일까?’라는 의심과 원망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주저앉아 본 그런 날. 묵언수행이라도 하듯 입을 다물고 글을 찾아 읽고 또 읽는다.
책도 보고 인스타 속에 작가님들이 올려주는 짧은 글도 찾아본다. 듣고 싶었던 말을 찾아 헤매다 보면 심장이 덜컥하고 멈추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런 순간에는 무슨 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맘에 드는 종이와 펜을 꺼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속에 쌓인 울분이 사라질 때까지 쓰고 또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잔잔해지는 것을 느낀다. 글씨를 쓰는 단순한 행위가 이렇게 큰 의미가 될 줄 모르고 시작한 취미생활이다.
그렇게 나를 위해 쓰기 시작한 글씨였는데 세상엔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그들에게 뜻하지 않게 위로가 되었고 고마움을 전하는 디엠과 댓글은 다시 한번 나에게 위로와 감동으로 돌아왔다. 이런 걸 선순환이라고 하나? 오늘은 전에 써 두었던 글귀 중에 말로 전하기 어려운 위로를 대신 전해 본다. 구구절절 쓰는 백 마디 말보다 마음을 대신 전해줄 따스한 글 한 줄이 더 필요한 순간이 있다. 엽서에 글씨를 쓸 때마다 간절한 진심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본다.
글씨를 쓰면서 만난 세상은 때론 아픔이었고, 위로였고, 사랑이었다.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예술보다는 글씨를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만 문득문득 내재되어 있는 예술인의 기운을 만나게 된다. 초심을 지키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 첫 마음을 지켜내 보기로 다짐해 본다. 오늘도 좋은 글을 만나기 위해 책을 펴고 따뜻한 한 마디가 간절한 누군가를 위해 종이 위에서 펜을 움직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