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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재 Jan 22. 2024

우물 안 개구리가 사는 법

살만 합니다

사람이 타고난 기질은 쉽게 변하지도 않고 바뀌는 건 더더욱 어렵다. 부모님의 이야기 속 어린 시절의 나는 현재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꼬꼬마 시절엔 골목대장이었고, 동네 아이들 죄다 모아 노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억에 없는 이야기다.




잔상처럼 남아있는 꼬마시절의 모습은 사람들 속에서도 늘 조용히 혼자 책을 보거나 끄적거리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돌이켜 보면 어려서부터 종이 안에 스스로를 가둬 두고 산건 아닌가 싶다. 활자가 찍혀 있는 동화책부터 흰 도화지까지 종이 속 세상은 제한구역 없이 자유로운 곳이었다. 이솝우화는 숲 속으로 데려가 동물들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해 주었고, 전래동화는 과거의 어느 양반집 마당으로 데리고 가 주었다. 명작동화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외국의 여러 나라를 경험하게 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종이 속에 담겨진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 빙의해서 대리만족도 느껴보고, 왜 그랬을까 안타까워하며 나름의 인생철학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때 만난 종이 속 세상이 가치관을 만들어 주었고 지금까지도 삶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여전히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산다. 책은 인생의 나침반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다만 더 이상 동화 속에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어른은 살아가기 위한 현실적인 책을 본다. 그 시절 그림일기를 쓰던 아이는 다른 의미의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끄적이며 살고 있다. 이왕이면 잘 쓰고 싶고 잘 그리고 싶은 욕망을 가득 품고 말이다. 겨우 손바닥 만한 엽서 한 장에 글씨를 올리는 일이 뭐라고 여전히 매 순간 긴장을 한다. 설렘과 긴장의 그 어디쯤.


사진출처_온재캘리


값비싼 수제 종이도 주변에 널려 있는 종이도 모두 첫 만남은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펜이라고 해도 서로 알아갈 시간과 친해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1m 조금 넘는 책상 위에 20cm도 안 되는 종이와 손가락보다 얇은 펜. 그들의 조화로움을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다. 작은 종이 위에 펜 끝을 살살 달래 가며 그날의 감정이 담긴 글씨들. 마음을 담고 애정을 담아 선을 긋다 보면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있다.




그래..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렇게 살피고 아끼고 정성을 담아야 되겠지. 한낱 사물에도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음을 담아 정성을 들이는데 하물며 사람이다. 감정을 가지고 표현하는 나와 똑같은 사람. 혼자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늘 이런 상념들로 사색이 깊어진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 늘 어렵고 조심스러운 이유다. 새로운 펜과 종이를 만나면 늘 밀당의 시간이 존재한다.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핸들링이 가능한 글씨도 쉽게 곁을 주지 않는데 사람은 오죽할까.


사진출처_온재캘리


문득 5~6년 전 여고 동창생이 충고라며 새겨들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혼자 책이나 보고 글씨만 쓰다 더 나이가 들면 아무도 찾는 이 없이 혼자 쓸쓸하게 늙어갈 거라며 동창회에도 꼭 나오고 친구들 모임에도 자주 얼굴을 비춰야 노년이 쓸쓸하지 않을 거라 말하는 친구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 말에 흔들릴 정도로 유약하진 않았지만 그보다는 그런 이유로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책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말을 건네주었고, 글씨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는 내면을 채워주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어려서부터 종이라는 우물에 갇힌 개구리는 그 안에서도 충분히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배웠고 멋진 사람들을 만났다. 본인의 성향을 제대로 알고 인정해 주면 삶이 조금은 살만하지 않을까? 타고난 성향에 주어진 환경에 대해 불평불만보다는 내재되어 있는 보석을 찾아 세공해서 빛나는 곳에 놓아주면 멋진 쓰임이 있을 거라 믿는다. 세공하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고 편안해졌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우물안 개구리도 그 나름대로 살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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