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예쁘고 싶다
출근길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섰다. 이제 막 꺼진 초록불은 사거리의 차들을 순서대로 다 보내야만 건널 수 있다. 한참을 서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에어팟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내리는데 발아래 소박하게 피어있는 작은 들꽃에 시선이 갔다.
‘쟤는 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꽃을 피우고도 수줍게 웃고 있을까?’ 작은 콩만 한 노란 꽃을 보는데 갑자기 눈이 시큰해지더니 그 아이와 내가 겹쳐 보였다. 찰나에 많은 감정이 지나쳐 갔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든 이름도 모르는 들꽃이 그날 이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일까?
그렇게 살고 싶었나 보다. 누군가는 한번 태어난 인생 이름을 날릴 정도로 큰 업적을 남기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스포트라이트 한 번은 받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된 것 같다. 묘한 마음이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은데 또 사는 동안은 예쁘고 싶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그저 존재 자체로 스스로에게 예쁜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날 그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처럼 말이다.
기다리는 사람 아무도 없지만 피어나야 할 때를 알고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고, 물러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자리는 비워주는 삶을 살고 싶다. 상상해 보니 참 멋진 모습인 것 같다.
오평선 작가님의 [꽃길이 따로 있나, 내 삶이 꽃인걸]이라는 책 속에 ‘남겨진 가족들이 덜 혼란스럽게 잘 정리해 둘 것..‘이라는 문장이 준 파장이다. 화려하게 피어 존재를 각인시킨 삶은 어쩌면 떠난 후 남겨진 이들의 마음에 잿빛 구름을 두고 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들꽃이고 싶었던 것 같다. 조용히 주변에 머물다 날아간 뒤에도 티가 나지 않아 남겨진 이들의 마음이 너무 무겁지 않기를 딱 그만큼만 예쁘게 머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작은 소망 하나 있다면 초록 잎이 예쁘게 우거진 산속 작은 암자 돌계단 아래 노란 꽃으로 잠시 머물다 가는 삶이면 좋겠다. 꼭 노란빛의 꽃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람에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풍경소리, 샛소리를 벗 삼아 예쁘게 피었다 조용히 날아갈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