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도 오늘처럼 밤새 비가 내렸다

여행지에서 밤새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마음

by 셈프레

코코가 갑자기 낑낑대기 시작한다. 견생 첫 여행. 코코랑 둘이서 훌쩍 떠난 여행에 신이 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엄청 피곤했는지 초저녁부터 축 처져있던 녀석이었다. 투두둑 투두둑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비가 온다. 지금 새벽 4시 반. 침대에 그대로 누워 창을 열고 가만히 들어본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치고, 사라락 사라락, 투두둑 투두둑, 나뭇잎들이 부딪치는 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가만히 코코를 끌어안고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당기며 한참을 바라본다. 좋다. 빗소리도,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공기도, 내 품에서 함께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코코의 온기도. 그냥 딱 좋다.

그 밤도 밤새 비가 내렸었다. 7년 전 이맘때였다. 캠핑을 좋아했던 시절이었고 쏠캠도 자주가는 편이었지만 혼자서 밤을 지내는 건 처음이었다. 평소 자주 가던 휴양림의 꼭대기 사이트에 텐트를 치고, 일찍 찾아온 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에는 이른 밤이, 그리고 이른 추위가 찾아온다. 거위털 침낭을 둘둘 감고 밤이 새도록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라리 비가 와서 다행이었다.

어차피 잠을 잘 수는 없었다. 잊어야 할 기억들이, 복잡한 상념들이, 내려놓아야 할 욕심과, 원망과, 아쉬움과, 안타까움까지. 그때의 내 신경은 팽팽한 바이올린 줄이었다. 더 당기면 곧 끊어질 듯 그렇게 팽팽한 시간들이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이 버거워서, 무작정 어디로든 떠나고 보는 날들이었다. 낯 선 곳에서 낯 선 마음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는 건 마음이 아주 무거워지거나 아주 가벼워진다. 여행은 날씨가 반이라고 말한다. 화창하고 맑은 날, 사진이 잘 나오는 날, 뽀송뽀송 꿉꿉하지 않아서 오래 돌아다녀도 상쾌한 날씨. 그런데 나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비를 좋아한다. 그냥 그 습하고 쌀쌀한 기운이 좋다. 빗물과 함께 마음의 답답함도 같이 씻기는 느낌이다. 그 가을 캠핑장에서도, 뚜벅이 삿포로에서도, 무언가 결론을 내려야 했던 그 겨울의 스페인에서도, 그리고 오늘 통영에서 같은 비를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기억도, 무게도, 그리고 조급한 마음도 없으니 그냥 좋구나. 이렇게 멍을 때려도 좋구나. 적어도 목적지를 타박 하지도 않고, 맛집을 추천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나를 믿고 따라오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주고 같은 것을 바라보는 여행 파트너를 하나 만들었으니 나는 진정한 프로 혼삶러이구나. 혼자서도 충분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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