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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 소리에 취해보라(2)

by 유용수

◎ 유용수 : 최근에 백일홍이 만발해 있는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백일홍이 핀 연못으로 가는 골목길에는 기명색 능소화가 돌담을 휘감고 있고, 숲과 대나무와 고택이 어우러져 분위기가 참 좋은 곳입니다. 연못에는 오래된 흰 백일홍과 붉은 백일홍 꽃잎이 연못에 떨어져 환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도 자주 보면 식상합니다. 그래서 비 오는 날, 연못 모습을 상상하면서 비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비는 오지 않고 백일홍은 자꾸 시들고, 연못에 떠 있는 꽃잎은 가라앉아 조급증이 났는데 며칠 후, 새벽에 소낙비가 왔습니다.

부랴부랴 새벽에 가보니 연못에 떠 있던 화려한 꽃잎은 다 사라지고 심지어 핀 꽃조차 빈약해서 몇 장의 사진을 찍으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능소화1.jpg

◇ 스님 : 법당 뒤편에 백일홍, 아카시아, 동백, 산국화랑 다양한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봅니다. 아무리 화려한 꽃도 시들 때 보면 초라합니다. 꽃의 시간으로 보면 몇십 년일지 모르지만, 우리네 시간으로 따지면 불과 며칠입니다. 가끔 법문에 꽃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꽃이라는 식물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파장은 큽니다. 오만하거나 잘난척하는 꽃은 없습니다. 꽃잎을 떨구며 초라하다고 투정 부리는 꽃도 보지 못했습니다. 떨어진 꽃잎이 가지 위로 다시 오르는 꽃잎도 보지 못했습니다. 꽃은 자기의 속살을 내보인 후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꽃은 우리 마음에 들어 있는 경계심을 풀게 만듭니다. 꽃을 보고 향기를 찾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럴 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경계는 이미 풀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향기를 눈을 감고 맡습니다. 그 순간만은 아무런 근심 고통이 없습니다. 빈부의 차이, 신분의 높낮이가 없습니다.

꽃은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에 겸손해야 하고 꽃과 마주할 때는 환한 미소로 바라봅니다. 그래야 꽃이 보내는 파동을 느끼며 내가 꽃이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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