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용수: 스님 요즘 자연재해가 무섭습니다. 그만큼 기후가 변했다는 것이겠지요. 요즈음 들려오는 소리가 자연재해입니다. 미국이나 호주 같은 선진국에서 산불을
진화하지 못하고, 일본을 비롯한 남태평양 섬나라에서는 해저 화산 폭발로 쓰나미가 발생하여 인명 피해가 발생합니다. 또한 지구 곳곳에서 홍수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고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 해수면이 상승해 도시가 물에 잠기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해수면이 1993년부터 2022년까지 평균 9.8㎝ 상승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더 많은 도시가 물에 잠길 것으로 예측하고,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인은 무분별한 개발과 지구 온난화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1차 산업혁명 이후 지구 온도가 1도가 상승했는데, 지금 상태를 지속한다면, 1도 상승한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합니다. 1도 상승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동·식물의 멸종과 자연재해가 발생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기후 변화로 발생할 필연적 피해와 고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요? 이제야
세계는 기후 위기에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국가는 석탄산업, 원전산업 등 에너지 산업에 대해 청정에너지나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탈탄소 전환 경제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이제 에너지는 100%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은 급속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적응의 위기”라고 경고합니다. 이제 환경 오염이라는 단어보다는 “기후 변화 또는 기후 위기”라는 단어에 익숙합니다. 그만큼 지구가 위험하다는 것이겠지요.
노자는 도를 자연에서 찾았고, 중용에서는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致中和 天地爲焉 萬物育焉”이라고 했습니다. “중과 화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바르게 자리를 잡고, 만물이 잘 길러진다.”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의 사회는 자연뿐 아니라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흐트러졌다고들 합니다. 순수라고 말하는 자연의 힘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 스님 : 철학자 ‘스피노자’도 자연을 신격화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자연의 중요성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같습니다. 인간은 자연과 공존해야 하고 하나뿐인 지구를 잠시 빌려 쓴다는 생각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문명의 발달과 과학의 개발로 인간은 갈수록 편리만을 추구합니다. 인간이 편리성을 추구하다 보면 지구는 피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전, 가끔 다녀오는 암자를 걸어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 암자는 삭도라는 시설물이 있어 무거운 쌀이나 연료 등을 실어 나르다 보니 안온한 오솔길이 잘 보존되어 참 좋았습니다. 그 후 몇 해 전, 다시 그 암자를 찾았을 땐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한적하고 안온했던 오솔길이 사라지고 자동차가 드나드는 길로 변해 암자 앞 넓은 주차장에서 내렸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보니 공사로 인해 고목들이 쓰러져 방치되어있고 산비탈을 깎아 도로가 뚫리고 시멘트로 포장되어 안타까웠습니다. 그야 물론 불자님들이 찾아오기가 쉽지 않아 불가피하게 도로를 확장할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뭔가 안타까웠습니다. 이처럼 불가피하게 훼손하는가 하면, 택지를 개발한다든지,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한다면서 나무를 자르고 산을 깎아 시설물을 설치합니다. 그러다 보니 비가 오면 산사태가 나고 산짐승은 사라지고, 심지어 새소리까지 사라지고 있습니다. 요즘 경치가 좋거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가까이에는 어김없이 펜션이 있고, 음식점이 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안타깝지요.
법정 스님은 지구는 사람들의 독무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많은 동물과 생물이 도우면서 살아야 할 생명의 터전이 지구입니다. 우리가 물질의 욕망을 번뜩거릴 때마다 지구는 더 황폐해지고 인간의 탐욕으로 지구는 끝내 회복할 수 없는 불가능 상태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는 자연의 생명적 상호작용의 결과에 따라 유지되어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숲은 인간의 동반자입니다. 이제 기후 변화는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제라도 동반자적 입장에서 해법을 내놓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체득하시고 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보리수나무에 감사의 예를 표했습니다. 자연은 인간과 상호 의존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