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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수 Sep 07. 2024

아프게 핀 꽃이라야 더 향기롭다(3)

  ◎ 유용수 : 꽃은 아무 때나 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피지 않는 꽃도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꽃은 피지 않습니다. 웃으면서 피는 꽃은 없습니다. 아프게 핀 꽃이라야 더 향기롭습니다. “야생화 하나가 필 때는 지구가 침묵한다”라고 비유하곤 합니다. 그런 야생화가 봄 산길에 지천입니다. 봄까치꽃, 양지꽃, 민들레, 자줏빛 제비꽃, 구슬봉이, 현호색, 남산제비꽃, 개구리 발톱, 금창초, 살갈퀴꽃, 자주괴불주머니 등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가 피고 집니다. 이러한 꽃들이 우리와 눈 맞춤 한번 해 보지 못하고 지곤 합니다. 저는 가끔 그들과 마주할 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코끝을 꽃에 대어 봅니다. 그럴 때 꽃들이 사르르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야 물론 바람에 흔들리겠거니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파브르의 《곤충기》는 ‘모든 생명체는 삶의 기쁨으로 넘쳐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아침 산책길에서 마주한 숲의 모습과 감정이 느껴집니다. 모든 생명체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질서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기쁨을 만끽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나무가 내 땅이라고, 내 자리라고, 내 것이라고 다툰 적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 스님:  어느 자연주의자는 “이른 아침 산책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잠을 떨치고 일어날 수 없다면, 첫 새의 지저귐에 전율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눈치를 채라. 당신의 봄과 아침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라고 말합니다. 숲길을 걷다 보면 숲의 장엄함에 나도 모르게 엄숙해집니다. 시월 중순부터 산길을 걷다 보면 옷이 다 젖습니다. 이것은 토양에 수분이 풍부하고 대기의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액현상溢液現像 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흔히 이슬이라고 하는데 이슬과는 다른 현상인가 봐요. 잡풀이 너풀거리는 오솔길을 걷다 보면 옷이 후줄근하게 젖어 있습니다. 자연 현상이겠지만, 감정이 달라집니다. 젖은 옷에서 풀 냄새가 배어있는 것 같고, 자연의 한 귀퉁이에 파묻혀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샤워하고 법당에 들었을 때 고요함과 차분함은 말이나 글로써는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요즘은 오솔길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산과 가까이하는 저로서는 자연이 곧 “도”라는 노자 사상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찰에 있으면 자연과 함께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수행자가 아니어도 “욕구 충족은 없어지고, 그냥 지금이 좋다.”라는 생각이 일어날 겁니다. 

  지친 사람에게는 쉬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힐링이고 휘게입니다. 힐링은 자연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힐링할 수 있는 장소는 숲이 있는 ‘고요한 장소’이어야 하고, ‘역사성이 있는 곳’이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어야 하는 곳’이 최적의 힐링처 입니다. 이런 숲속에서 가느다랗게 반복적으로 숨쉬기하거나, 고목을 끌어안고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해 보세요. 짊어지고 있던 무엇인가를 내려놓은 기분이 들면서 맑아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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