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용수 : 조용한 오지마을에서 인문 활동가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분들은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할머니, 어머니에게 글을 가르치기 위해 쉼 없이 마을을 오갔습니다. 인문 활동 총책을 맡으신 선생님과 긴 이야기는 못 나누고 간략한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어느 이야기보다 책이 주는 진실을 앞서지 못하기에 일부러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분들은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후, 글을 쓰게 해서 시집을 냈습니다. 바로 그 시집이《할매들은 시방》(정한책방. 2020)이라는 시집입니다. 이 시집이 곁에 항상 놓여 있습니다. 말문이 막히거나 뭔가 답답함을 느낄 때 슬그머니 펼쳐서 읽어 봅니다. 울컥하고 가래톳이 올라옴을 느낍니다. 이런 시가 있습니다.
우리 곁을 떠난지 벌서 이십 년
내 나이는 벌서 팔십이 다 대아가고
추석에 자식들 모두 모이니
영감 생각이 간절하오
술 때문에 몸 상해 못 먹게 에닮았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후회만 남소
칠십도 못 살고 갈 것이었다면
차라리 원었이 잡수라고나 할 것을
영감
하늘에서는 술 안자시오 가고 나서 보니
주인 없는 지갑에 지폐 이십만 원
큰아들한테 남긴 편지 한 장
엄마한테 잘하라는 그 편지를
생각하면 내 맘이 앞푸요
박연심 〈보고 싶다 우리 영감〉 전문 – 책에 실린 그대로 임.
이 책에는 우리들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숨겨둔 삶이 있습니다. 며느리에게 전하는 이야기,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할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리고 서럽게 살아온 자신에게 괴발개발 쓴 글에서 그분들의 한숨과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곤 합니다. 지금쯤 그 시를 쓰신 분 중에 몇 분은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 스님 : 네 읽지는 못했습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그분들의 삶이란 말 그대로 현대사의 슬픔이기도 하고 억센 역사이겠지요. 그분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삶을 힘들게 살아왔고, 또한 남존여비의 잔존이 그분들의 삶을 묶었는지 모르지요. 아들을 낳지 못해서 힘들게 시집살이했던 이야기며, 시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시대의 삶이 오죽했겠습니까?
더더구나 여자가 많이 배우면 시집가기 힘들다는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 있던 시대였으니 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평생을 암흑에서 살다가 글을 깨우치자 자신들의 혹독한 삶을 털어놓았을 책을 미리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 시집을 꼭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