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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Jun 02. 2022

미움

나를 품는 글쓰기 첫번째

  마음에 뾰족한 가시가 돋는다. 큰맘 먹고 참여한 스터디에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감정이 상해버렸다. 수업을 다 끝내지 못하고 먼저 나와 빈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배꼽 밑에서 뭔가 꼼질 거르는 게 느껴졌다. ‘같이 하는 게 아니었어. 대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거야?’ ‘이 수업이 정말 너한테 도움이 되니?’, ‘차라리 네가 꼭 필요한 스터디를 하는 게 낫지 않겠어?’ 내 안에 내가 모르는 수많은 내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인다.


  관계에 있어서 나는 당당했다. 언제나 환영받는 사람이었고 모두가 좋아했다. 그런 나에게 불만을 표시하거나 싫은 내색을 할라치면 먼저 선을 그었다. 그야말로 독불장군. 어디서부터 시작된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내가 싫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관계는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났다. 상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어쩌면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어보지 못한 건 아닐까?


미움 미움이란 단어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난다. 웅얼거리는 옹알이 같기도 하고 세차게 부는 바람 소리 같기도 하다. 아직 길들지 않은 신발의 가죽 냄새 같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내 코끝에 남아있던 냄새다.
pixabay 의 jplenio

처음 만난 상사는 아직 결혼을 못 한 나이 40을 바라보는 여자였다. 어찌나 변덕이 심한지 좀처럼 비위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한 번은 내가 신은 베이지색 구두를 보더니 무척 맘에 들어 했다. 과장님 생일날 난 흔쾌히 그 구두를 선물했다. 악어가죽이었던가? 가죽에서 가공된 화학 냄새가 났다. 예쁘지만 냄새는 싫었다. 그녀는 예뻤지만 늘 날이 서 있었다. 환한 미소 뒤에는 언제 날아들지 모를 화살이 숨어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사직서를 냈다. 좋은 관계로 끝내지는 못했다. 나와 일하던 동료 둘이 함께 낸 사직서로 그녀를 힘들게 하지는 못했다.

서운함이 컸다. 내가 얼마나 잘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를 내치다니. 좋아했던 마음보다 미움이 더 커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미움은 어느새 원망으로 억울함으로 바뀌었다.


내게 달콤한 말을 건넨 사람이 낸 상처는 그만큼 더 깊었다. 내가 좋다며 그렇게 칭찬하더니 어쩜 한순간에 아니라고 말도 안 된다고 내 말을 가로막았다. 본인은 알까? 말은 차가운 얼음이 되어 내 속을 가득 채웠다. 원망과 분노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었다. 정작 그 말을 한 사람은 기억도 못할 텐데. 나 혼자 밤새 끙끙 앓았다. 점점 커지는 미움을 어쩌지 못하고 아득한 시간을 보냈다.


사랑이 없다면 미움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데도 그 마음 하나 다스릴 줄 모르는 걸 보면 아직 어른은 멀었나 보다. 뜨거운 물에 누룽지를 끓였다. 몽글몽글 퍼지는 모양새가 꼭 미움을 닮았다. 얼른 찬물을 한 컵 넣고 적당히 온도를 맞췄다. 따뜻한 누룽지 한 수저에 잘 익은 김치를 한 조각 얹어 입에 넣고 나니 그렇게 차오르던 얼음덩어리가 녹는듯하다.

나는 정말 미워하고 싶었을까? 미움이란 감정의 시작은 사랑이었을 테다. 사랑이 없었으면 미움도 시작되지 않았겠지. 상대에 대한 기대와 온정은 어느새 내 안에 그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인지하기 시작했고 나를 위한 보호막을 치워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신임이 두터울수록 오해를 풀기 위한 시도도 빨라진다. 누룽지 한 수저에 금세 미움을 덮어놓고 뭔가 다른 깊은 속내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 거라고 혼자 위로할 만큼 말이다.


아직은 어린 어른인가 보다. 상처받은 내 감정을 잘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제대로 들여다보고 정확히 표현하고 객관적으로 묻는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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