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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그렇게 사람이 되어왔다

내가 역사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

  학교에서 배운 것을 한번 되새겨보자. 최초의 인류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바로 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다. 현생인류로 발전한 사피엔스와는 조금은 계통이 다르지만 직립이 가능했고, 도구를 사용한 점 등에서 가장 초기 단계의 화석으로 존재하는 인류이다. 고인류 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이 발견된 지역이나 신체 상의 차이에 따라  다시 여러 가지로 구분하지만 여기서는 굳이 그에 대한 설명은 필요없을 것이다. 솔직히는 나에게 전달할 지식이 충분치 않다. 다만 이 글에서는 최초의 인류로부터 현대 인류로 발전해오는 그 긴 과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자 이제부터 우리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아주 아주 먼 옛날, 인류로 발전했음직한 어떤 동물이 어느 날 숲을 버리고 들판으로 나왔다. 왜 이 동물이 숲을 버리고 들판으로 걸어 나왔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는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어떤 이는 숲 속 동물들 사이에서 먹이 경쟁에서 밀렸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인간의 커다란 특징이라 할 호기심의 발동으로 나왔으리라 설명하기도 한다. 호기심으로 설명하기에는 들판(광야)의 생존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아마도 먹이경쟁에서 밀렸다는 설명이 보다 설득력이 있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인류 발생의 근원적인 이유를 확언할 수 없다는 것은 돌려 생각해보면 그만큼 인류 태초의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이 확장될 수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상상력의 공간은 우리 문화 콘텐츠의 보고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예를 들자면 현재 힙한 문화의 하나인 웹툰이나 게임스토리 등으로 말이다.  


  잠시 딴 얘기를 해보자. 언젠가 어느 학생이 나에게 역사를  전공하면 돈을 잘 벌 수 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나의 대답은 “아마 가능할 걸?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문화적인 콘텐츠를 만든다면 돈 좀 벌 수 있는 세상이더라고?  니들이 즐겨 하는 게임 중에 '삼국지', '대항해시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스톤에이지' 모두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게임 스토리에 기반하는 게임 아냐?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는 기껏해야 선생이 되는 것이 다였지만 말이다” 였다. 그래서 그 학생은 나의 꼬임?에 넘어가서 한양대인가 역사문화콘텐츠 학과인가 뭐 그런 대학 그런 과를 진학한 것으로 기억한다. 예를 든 것 같이 사람들이 즐기는 게임의 배경이 역사인 경우가 많다. 현대 사회는 이렇게 역사와 디지털 기술이 만나 어마어마한 '포텐'이 터진 것이다. 또 영화는 어떤가? 천만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들 중에는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각설하고, 이저 본 얘기로 돌아가자.


  잠시 인간의 특징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인간은 호랑이처럼 용맹하지도, 코끼리와 같이 덩치가 크지도,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오랫동안 살지도, 새처럼 하늘을 날지도, 박쥐처럼 초능력을 사용하지도 못하는 어찌 보면 약점들의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 약체가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마도 특별한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전략 중 하나가 직립이다. 이유는? 그 답은 모른다이다. 즉 왜인지는 알수 없으나 인간은 오랜 세월에 걸쳐 힘들게 앞발을 들고 직립하는 훈련과 아울러 엄지와 검지를 직각으로 펴기 위해 노력했던 듯하다. 직립은 손의 자유를, 엄지와 검지의 직각은 도구를 만드는 데 적합한 조건이라고 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하여 남다른 점은 도구의 사용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침팬지나 고릴라와 같은 유인원류나 최근 너무도 영악해진 애완견들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도구의 사용이 인간의 남다른 점이 아니라 도구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만이 갖는 특장점이라고 하겠다. 


  불의 사용은 인간만이 갖는 장점이다. 혹 독자들 중에 아주 오래전 방영되었던 애니메이션 '정글의 왕자 모글리'를 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비디오로 녹화해서 두고두고 반복하여 아이에게 틀어주었던 추억의 만화영화이다. 거기서 정글에서 자란 모글리가 정글의 무법자인 호랑이 시어칸을 물리치기 위해 어려움을 극복하며 불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장면이 나온다. 어마무시하게 무서운 인도호랑이 시어칸도 불을 보면 무서워하며 도망을 가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 불의 사용은  엄청난 추위나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고마운 수단이었을 것이다. 한가지 더 불이 인류에게 준 이점은 바로 화식(火食)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생식에 비해 화식은 한번에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의 양이 많다고 한다. 음식물의 섭취량이 늘면서 인류의 뇌용량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고, 다른 동물에 비해 인지능력이 한층 우월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불의 발견은 우연적인 '사건'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을 끊임없이 필연으로 바꾼 것이 인류 문명사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생각해볼 것이 하나 있다. 야생 세계에서의 사냥 성공률은 얼마일까? 맹수인 호랑이나 사자 조차도 20~30% 정도라고 한다. 초기 인류 역시 그 확률을 크게 넘어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환경이 나쁠 경우에는 먹이가 없어 굶어죽은 인류의 시체가 널려있었을 수도 있었을 테고, 살아있는 인간들이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거나, 심지어는 약한 인간을 강한 인간이 잡아먹는 일은 수시로 일어났을 것이다. 상상하기에는 너무 끔찍할 수도 있겠으나 어쩌겠는가. 이는 아마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가능성이니 말이다. 인류의 처음은 이렇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그야말로 '자연인'의 상태가 무척이나 오래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강의 시간에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인간은 늘 무수히 실수와 실패의 연속 중, 어쩌다 만난 성공의 경험을 누적시키며 인류사로써 발전시켜왔다. 그러니 우리는 시도와 실패를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여러 번 실패하는 가운데 성공이 숨어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피카소도 한점의 걸작을 나오기까지 만여 점의 습작이 있었고,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는 에디슨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사회 분위기나 교육환경은 시도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실수나 실패에는 경기를 해버리는 대단히 반인류사적인 모습을 보이니 안타깝다. 좀 더 담대하게 각자의 삶을 개척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이 지금껏 지구위에서 살아온 삶의 본질적 모습이었음을 기억하자.'라고.


  인류의 처음은 이렇게 참으로 미미하였다. 그러했던 인류가 이제 모든 생물체 먹이사슬의 꼭대기를 차지하며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면서, 나아가 신의 경지를 넘보는 정도까지 발전해 왔지만 말이다. 그야말로 '네 처음은 미미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성경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렇다 인류의 역사의 진행 방향은 미미함을 창대함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인간은 그런 존재였다. 내가 역사에 대한 희망을 어떤 순간에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인류의 처음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시적으로 볼 때는 너무도 많이, 너무도 자주 부정적인 면이 교차하여 희망을 찾기 어려운 때 조차도 거시적으로는 꾸준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해왔음을 믿는 것, 이것이 역사적 희망이라고 하겠다. 때로는 야만이 횡행하는 불행한 시기도 있었겠지만 반드시 그 야만은 인류의 가장 강력한 휴머니즘이란 문명의 힘으로 극복되어왔음을 믿는 것, 이것이 역사의 희망이란 것을 난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역사적 희망이 필요한 시기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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